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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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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몰두한 고토 형을 집에 남겨두고, 남자와 나는 세탁물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아스팔트를 밟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슬리퍼 아래를 달구는 온기가 느껴졌다. 곧 열 발짝쯤 걷기만 해도 온몸을 땀으로 적시는 날이 올 것 같았다. 세탁물을 선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가방에 집어넣은 바람에, 가방끈이 어깨를 짓눌렀다. 남자는 걸으면서 자기가 가진 동전을 세고 있었다.
노부, 혹시 나한테 할 말 없어?
사랑해요.
그거 말고.
어, 답이 따로 있는 질문이었어요?
나는 보고 있던 영상을 정지시키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요새 고토 형과 내가 빠져 있는 게임의 실황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남자의 표정을 읽었다. 화가 난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윗입술 한쪽이 살짝 들린 모양이 귀여웠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야 한다.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대형 건조기 앞에서. 갑자기 주어진 퀘스트에 머리가 잘 돌지 않았다. 어차피 잘못한 일을 추궁당하는 게 아닌 것 같으니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냥 케이가 말해줘요. 나는 잘 모르겠어.
정말?
응.
하와이, 이탈리아, 발리…
잠깐만요. 그만! 알았어요!
남자가 아까 내가 보고 있던 허니문 여행지를 순위대로 읊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손을 떼어내자마자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스페인, 파리… 차라리 내 귀를 막는 편이 빠를 것 같아 손으로 양쪽 귀를 꽉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속으로 숫자를 아주 천천히 열까지 세고, 이젠 끝났겠지 싶어 살짝 눈을 떴을 때, 바로 앞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왁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로 물렸다. 의자에서 떨어지려는 내 등을 그가 얼른 받쳤다.
아, 케이는 왜 맨날…
네가 너무 허술한 거야.
그래도 모른 척 해줄 수 있잖아요.
바보야. 신혼여행지를 혼자 정하는 사람이 어딨어?
곧 건조기가 멈췄다. 그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기계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의 말 중에 하나도 틀린 말이 없어 괜히 짜증이 났다. 사실, 짜증이라기보다는 창피함에 가까웠다. 그래서 옷들을 가방에 넣기 전에, 따끈한 트레이닝복을 얼굴에 갖다댔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집에 돌아가는 길, 고토 형에게서 급히 출근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한두 번이 아니라 익숙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서, 고토가 없을 때 먹으라며 비싼 아이스크림 바를 사 줬다. 계산을 마치고 친자와 양자를 차별하는 부모 상황극 중이냐고 농담을 했다가, 기껏 얻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뺏겼다.
생일에는 못 가.
어디를요?
여행.
아무데도 안 가요. 그냥 찾아만 본 거에요.
거짓말. 넌 꼭 하고 싶은 것만 찾아보잖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자꾸 멋대로 움직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장소도, 시기도 정한 게 없었다. 언젠가는 가고 싶다. 그 언젠가가 올해 안이면 좋겠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길에 인적이 드물어진 사이 내 손을 살짝 잡았다 놓으며 말했다. 수영할 수 있는 바다가 가깝고, 따뜻한 곳이면 좋겠어. 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와락 껴안았다.
겨울? 연말에 갈까요?
뭐, 가능하다면…
그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면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대신 들고 있던 가방을 내게 넘겨줬다. 그리고 일정표에 쓸 게 생겼다는 내 말을 듣고 픽 웃었다.
게임에 몰두한 고토 형을 집에 남겨두고, 남자와 나는 세탁물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한낮의 아스팔트를 밟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슬리퍼 아래를 달구는 온기가 느껴졌다. 곧 열 발짝쯤 걷기만 해도 온몸을 땀으로 적시는 날이 올 것 같았다. 세탁물을 선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가방에 집어넣은 바람에, 가방끈이 어깨를 짓눌렀다. 남자는 걸으면서 자기가 가진 동전을 세고 있었다.
노부, 혹시 나한테 할 말 없어?
사랑해요.
그거 말고.
어, 답이 따로 있는 질문이었어요?
나는 보고 있던 영상을 정지시키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요새 고토 형과 내가 빠져 있는 게임의 실황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남자의 표정을 읽었다. 화가 난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윗입술 한쪽이 살짝 들린 모양이 귀여웠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야 한다.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대형 건조기 앞에서. 갑자기 주어진 퀘스트에 머리가 잘 돌지 않았다. 어차피 잘못한 일을 추궁당하는 게 아닌 것 같으니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냥 케이가 말해줘요. 나는 잘 모르겠어.
정말?
응.
하와이, 이탈리아, 발리…
잠깐만요. 그만! 알았어요!
남자가 아까 내가 보고 있던 허니문 여행지를 순위대로 읊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손을 떼어내자마자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스페인, 파리… 차라리 내 귀를 막는 편이 빠를 것 같아 손으로 양쪽 귀를 꽉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속으로 숫자를 아주 천천히 열까지 세고, 이젠 끝났겠지 싶어 살짝 눈을 떴을 때, 바로 앞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왁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로 물렸다. 의자에서 떨어지려는 내 등을 그가 얼른 받쳤다.
아, 케이는 왜 맨날…
네가 너무 허술한 거야.
그래도 모른 척 해줄 수 있잖아요.
바보야. 신혼여행지를 혼자 정하는 사람이 어딨어?
곧 건조기가 멈췄다. 그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기계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의 말 중에 하나도 틀린 말이 없어 괜히 짜증이 났다. 사실, 짜증이라기보다는 창피함에 가까웠다. 그래서 옷들을 가방에 넣기 전에, 따끈한 트레이닝복을 얼굴에 갖다댔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고.
집에 돌아가는 길, 고토 형에게서 급히 출근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한두 번이 아니라 익숙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서, 고토가 없을 때 먹으라며 비싼 아이스크림 바를 사 줬다. 계산을 마치고 친자와 양자를 차별하는 부모 상황극 중이냐고 농담을 했다가, 기껏 얻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뺏겼다.
생일에는 못 가.
어디를요?
여행.
아무데도 안 가요. 그냥 찾아만 본 거에요.
거짓말. 넌 꼭 하고 싶은 것만 찾아보잖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자꾸 멋대로 움직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장소도, 시기도 정한 게 없었다. 언젠가는 가고 싶다. 그 언젠가가 올해 안이면 좋겠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길에 인적이 드물어진 사이 내 손을 살짝 잡았다 놓으며 말했다. 수영할 수 있는 바다가 가깝고, 따뜻한 곳이면 좋겠어. 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와락 껴안았다.
겨울? 연말에 갈까요?
뭐, 가능하다면…
그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면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대신 들고 있던 가방을 내게 넘겨줬다. 그리고 일정표에 쓸 게 생겼다는 내 말을 듣고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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