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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23:46







"...불편하군"

웡은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익숙한 장소에서 불편한 옷을 입고 기다리는 마음이 마냥 무거웠다. 제 처지가 우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평생 거리가 먼, 이상한 옷을 입고 앉아 볼품 없이 앉아있다. 그 이상 나가려던 마음은 금새 다잡혔다. 세상은 본디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웡은 익숙한 장소를 천천히 바라보며 과거의 추억을 회상했다. 현 주인에 맞춰 구조가 바뀌었지만 근본은 달라질 것 없다.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앞으로 처하게 될 사실 보다는, 당장의 무료함이 웡을 잡념에 들게 했다. 스트레인지의 공간에서 그의 것에 손댈 생각은 없었고 그저 얼굴을 보고 묻고 싶었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얇은 직물이 성가셨다. 옷은 그저 사람을 한꺼풀 뒤덮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입은 옷은 태초부터 그 사용도가 달랐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옷을 입는걸 도운 허니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렇게 그런 용도에만 맞춘 옷은 또 처음이네요"

그런 용도라. 옷 때문에 웡의 자세는 어색하게 몸을 접은 상태였다. 그녀의 마법으로 강제로 걸친 상태에 불과한 옷은 웡의 몸을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실루엣은 당연했고, 무슨 물건도 감출 수 없도록 비치는 재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으라 했으니 입는 수밖에. 일부러 내어준 옷이 작은 듯 하다고 허니는 웡의 팔을 끼우면서 연신 마법진을 그렸다.

방에 들어오기 직전 그를 대하는 두 마법사가 이어 떠올랐다. 소서러 수프림이 명령을 내렸기에 너를 그의 처소로 안내한다. 생텀 마스터를 대하는 태도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무례함이었다. 본디 사람이라면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는 처우에 웡을 따라오던 허니 역시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하지만 당사자인 웡이 거리낌 없이 검사에 응하며 몸을 내어주는데 그녀가 무어라 할 수 있을리 없었다.

긴 시간에 거친 수색을 마치고 나서야 웡은 허니를 두고 홀로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짧지 않았을텐데 웡은 여기에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스트레인지를 만날 수 있는지 속으로 가늠했다. 한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으니 잡념이 계속 차올랐다. 숨을 고르며 그가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스펠을 입 안으로 굴렸다. 다른 생각을 멈추는데는 이만한게 없지. 아무래도 그가 오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분위기가 주는데서 오는 긴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 다르게, 웡에게 주어진 긴 기다림을 뒤집어 마음의 평안을 찾도록 노력했다. 어느새 뻣뻣한 몸이 곧게 펴지고 움츠러든 자세가 제자리를 잡았다. 시선은 문을 향하지 않고 사선을 자연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반복적인 호흡이 이어지고 웡이 다음으로 생각할 주문을 정리할 즈음, 문 밖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안녕 웡,"

낮은 저음이 그의 귀를 두드렸다. 양 옆으로 열린 문이 스트레인지의 손짓에 드르륵 소리를 내며 닫히고, 큰 보폭으로 남자가 미끄러지듯 걸어들어왔다. 그의 인상은 웡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내가 아는 스트레인지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웡이 생각했다.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웡은 그의 생각에 잠겨 스트레인지가 보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를 기다리는 탓에 몸이 지금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망토를 풀어 던지자 망토가 제 자리를 찾아 걸렸다. 침상으로 스트레인지가 다가오자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더 강하게 웡을 덮쳤다. 웡은 스트레인지를 두고 처음으로 그가 참 낯설다고 생각했다.

"잘 어울리는군. 생각 이상으로,"

웡이 자리에서 일어서 그와 눈을 맞췄다. 스트레인지에게서 풍기던 무거운 분위기가 한결 덜어지고 여유가 얹히자 웡은 순간 그전에 그가 알았던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처음 카마르타지에서 배움을 청했을 적의 스트레인지를.

"우습지 않아? 자네 처지가 말이야"

웡은 대꾸하지 않았다.

"정말 누가 생각한 의상인지... 박수라도 쳐주고 싶군."

빙글거리며 스트레인지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의 시선이 웡의 몸에 진득하게 내려앉았다.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때 보다도 끈적한 느낌이 드는 시선이었다. 웡은 이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태연하게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에이션트 원, 정말 자네가 죽인건가?"

스트레인지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천천히 기울어졌다. 그의 표정은 오만했다. 웡은 그런 그의 시선을 줄곧 봐왔지만 이런 적대적인 눈빛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난 그 현장에 있지 않았어, 현장을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지. 내가 임무를 끝내고 왔을때 뉴욕 생텀으로 피난을 온 소서러들을 보살피는데만에도 눈코 뜰 새가 없었네."

웡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난 자네 입으로 듣고 싶어. 정말, 자네가 그분을 죽였나?"

스트레인지의 고개가 숙여지고 웡은 똑똑히 그가 코웃음 치는걸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나오시겠다."

"모르도를 비롯한 다른제자들은... 그들 역시 자네가..."

"언제까지 내가 가만히 듣고 있을지 선을 가늠하는 중인가?"

"스트레인지"

"웡, 내가 지금 자네를 이렇게 가만히 두는건... 자네에 대해 특별히 대단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야"

스트레인지의 목소리에선 쉿쉿거리며 웡을 위협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목을 긁는 듯 토해내는 말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웡은 겨우 침을 삼켰다. 다가온 스트레인지의 눈을 마주치고 있기는 하나 이것이 최선이었다.

"에이션트 원께서는... 자네를 믿었네"

가까스로 웡이 말을 이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스트레인지가 웡을 관찰하듯 바라보다가, 뒷짐지고 있던 오른손을 꺼내 들었다.

긴 손가락에는 아직도 큰 흉터자국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손의 잔떨림은 그의 상태와는 무관했다. 손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웡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웡 또한 평균 이상으로 큰 성인 남성이건만 스트레인지 보다 키가 작았다.

"떨고 있군"

이 자리에서 웡이 스트레인지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웡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인지의 아름다운 손이 천천히 웡의 어깨를 훑어내렸다.

"나 역시 자네를 믿었고"

"오...자네는 너무 순진해....."

얇은 직물 아래 웡의 몸선이 그대로 들어났다. 웡은 어깨위에 느껴지는 촉감에 반사적으로 움츠러 들었다. 그의 마음은 평온을 가장했지만 방금 보인 몸의 반응은 그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파동을 일으켰다.

"유혹적인데"

스트레인지의 목소리가 그를 꿰뚫었다.

"이 옷은 내 의지가..."

"간단히 찢어발길 수 있는 재질이야. 힘을 잘못 주면 사람까지도 간단히 찢어발길 수 있지."

웡이 그대로 스트레인지의 의도를 살폈다.

"이 침상 위에서 과연 내가 몇 명을 죽였을 것 같나"

그렇게 말하는 말과는 다르게 스트레인지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얼핏 그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 처럼. 웡은 그의 저의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초인에 접어든 그의 말은 웡의 심계를 계속해서 어지럽혔다.

스트레인지가 말하는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유혹적이었다. 부드럽게 굴러가는 음성이 귓가에 간질거렸다.

"나야 모르지"

웡은 눈을 두어번 깜빡거리고는 툭 내뱉었다.

"죽음을 각오한 눈이군"

"자네가 알아차린 것 그대로야 스트레인지. 난 여기에 죽으러 왔네. 죽일 생각이 들거든 가급적이면 자네 손에 단번에 죽었으면 좋겠군. 그 전에 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들려주면 고맙겠고"

웡을 바라보던 스트레인지는 약간의 시간을 두고 헛웃음을 토해냈다. 하, 하는 소리가 그의 입밖으로 터져나오고 연이어 스트레인지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 답군"

"저 마법사들이 주장하는대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나? 그게 우리 소서러들의 가장 근원적인 이념을 거스른다는걸 알면서도."

"그대 눈에는 어떻게 보이나?"

웡은 본능적으로 이 자리에서 스트레인지가 제게 무엇도 뚜렷하게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먹잇감을 둔 포식자의 유흥에 불과할까. 웡이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그 이상의 무엇도 그려지지 않았다.

저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하는 웡이 스트레인지로서는 기꺼운 듯 했다. 도대체 왜? 웡은 머릿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도 표정으로 생각이 다 드러나는군"

어깨를 쓸던 손길은 허리를 파고들었다. 웡이 숨을 일순간 들이키자 스트레인지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각오에..."

웡은 그 시선을 더는 마주할 자신이 들지 않았다.

"자극에 대한 각오도 되어있길 바라네"





늦은시간까지도 허니의 방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소식이 들려올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녀의 몸짓은 잔뜩 불안과 겁을 먹은 사람 그 자체였다. 방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기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하기도 하며 허니는 웡을 기다렸다.

그녀의 바람은 하나였다. 부디 그가 살아 있기를. 그녀가 소서러 수프림의 소식을 접할 즈음이면 이미 카마르타지 내 마법사들은 이미 소식을 알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소서러 수프림의 침실을 무단으로 혹은 그들의 공인 하에, 침입한 사람들 중 과연 몇이 살아남았는가.

제가 과연 그를 걱정하는게 맞는지 제 처지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허니는 그의 죽음 그 자체와 그 죽음이 가져올 파장이 두려웠다. 그걸 기다리는 사람도 있겠지. 무의식중으로 손목을 쥐던 허니는 뭉툭한 촉감에 익숙해진 자신을 내려보았다.

혹시 침실을 치우기 위해 마법사들을 소집하지 않을까. 허니는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녀가 걱정한 것과 다르게 다행히도 그녀를 포함한 마법사들을 새벽에 부르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망설이던 허니는 익숙한 길을 따라 웡이 배정 받은 방을 향해 급히 몸을 움직였고, 그 과정 중에서 다른 소서러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

하아아, 깊은 한숨이 물밀려오듯 터져나왔다. 남들이 최대한 듣지 못하도록 숨죽여 터트린 한숨은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는데, 그 다음 연이어 나온 한숨에는 짜증이 사실 섞여 있었다.

허니는 피곤에 물든 눈두덩이를 비비며 웡의 방 문을 닫았다. 방 한가운데 침대에는 낯익은 사람이 누워 있었고 그 사람이 웡이라는 것은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도로롱 소리를 내며 태평하게 잠든 웡을 보자 허니는 안도감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멀쩡히 살아 있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가 죽지 않고 돌아왔다.

허니가 주저앉으며 내는 소리에 도로롱 소리가 멈추고 웡의 몸이 뒤척였다. 웡이 눈을 뜨자 허니가 자리에서 일어서 침상으로 다가갔다. 허니의 시선으로 봤을때 웡은 너무나 태평해 보였다. 큰일이 있었을 법도 한데. 잠이 덜깼는지 반쯤 잠긴 눈을 한 웡을 내려보며 허니가 그를 확인했다.

"소서러 수프림과 그... 대화는 잘 끝나셨나요?"

허니는 용하게 '그 옷을 입고 몸의 대화는 잘 나눴는지' 묻지 않았다. 웡은 여전히 몽롱한 눈으로 허니를 바라보았다.

허니가 눈에 보이자 웡은 크게 하품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웡은 몸을 일으켜세워 침상에 앉자 마자 허니의 등을 턱턱 두드려주었다. 표정에서 한눈에 밤사이 그녀가 얼마나 그를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거친 위로에 허니가 안도하며 몸을 비틀거렸고, 웡의 배려로 허니는 그의 침상 끝자락에 앉을 수 있었다.

허니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어디까지 물어도 될지 몰라 망설였다. 허니를 기다리던 웡은 그녀를 바라보다 굳은 표정으로 그가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지? 자세히 말해주겠나"

"알고 계시는 내용이 아마 제가 아는 전부일거에요. 저도 잘 알지는 못해서..."

허니의 대답에 웡이 오른손으로 그의 턱을 쥐었다.

"나는 단편적으로 밖에 모르네, 그마저도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객관적으로 진실인지 몰라."

그의 말에서 웡의 고뇌가 느껴졌다.

"상황을 알아야겠어"

허니 또한 웡에게 맞춰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느 정도 다짐을 마쳤는지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달리했다. 그녀에 맞추어 웡 또한 그녀를 경청하는 자세로 빠르게 바꾸었다.

웡이 고개를 끄덕이자 허니는 팔목을 내밀었다. 웡이 순간 파악을 위해 시선을 손목으로 옮기자 허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선 이것 부터 어떻게 하고 이야기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웡은 빠르게 수긍하고 양손에 마법진을 그렸다. 웡의 간단한 손짓에 마도구는 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라고 하니 풀지만, 이거 이래도 자네에게 괜찮을지 모르겠군"

"풀기만 하면 그 다음은 쉽죠"

웡은 그녀가 주로 맡고 있었던 일과, 그녀를 가르친 스승이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그 사실을 잊고 있었군"

허니의 손아귀가 주황빛으로 빛나고 허공으로 떠오른 마도구에 약간의 조작이 가자 휘어진 뭉툭한 금속이 가상의 손목에 채워진 듯 웅웅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웡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이며 허니가 마도구를 허공에 띄워 다른 공간으로 수납하듯 집어 넣었다.

"그럼... 무엇부터 말하면 좋을까요"

허니의 태도는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무엇 부터 이야기 해야할지 고민하던 허니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에이션트 원께서 사고를 당하셨을때....."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네, 히말라야에서"

"좋아요.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하고 제가 아는것에 대해 다 말할게요"

"알겠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봤던 상황 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한없이 길어졌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허니 스스로 역시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와 상황 설명에 놀란 듯 보였다.

스트레인지가 최근 보이는 행보와 그의 아래에서 세력을 쥐고 있는 두 세력을 설명하는데까지 설명하며 허니는 계속해서 다음 이어질 말을 골랐다. 계속해서 듣고 있던 웡의 표정이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허니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는 이들의 이름이 이런 상황에서 나오자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그간 그런 상향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던 두 사람이라 더더욱 그랬다.

"카딘...과 프리실라..."

웡이 작은 소리로 그들의 이름을 곱씹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들이 세력을 잡는 과정은 가히 놀라웠다. 아니, 혼란스러운 와중이니 그들이 득세하기 쉬웠을 것이다. 웡은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허니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길어진 이야기는 최근에 있었던 크고작은 사건들까지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긴 이야기에도 웡은 허니의 말을 끊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그의 모습에서 허니는 과연 방금까지 제가 전달한 이야기와 웡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차이를 가질지 궁금해 했다. 또 이 다음 웡이 가지게 될 행보 또한 그녀의 주된 궁금증이었다.

웡은 이렇다할 말 없이 계속해서 생각했다. 생각을 하고 수를 쓰는 것은 그가 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거나 일을 수행할 때 필요한 것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 와중 혼자서 움직일만한 여건은 아니었다.

허니는 웡에게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뒤집어야 한다 따위의 대단한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녀도 인간이기에 부질없다는걸 알면서도 기대를 품는 것을 막진 못했다.

웡의 입술이 달싹였다. 허니의 몸이 자연히 그를 향해 기울었다. 그가 뭔가 말하려나보다, 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려나 보다.

"허니"

옅게 기대가 어리고 웡이 때맞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예"

"할 수 있는 것 부터 시작해야겠네"

웡의 이야기에 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니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제멋대로 기대해놓고 멋대로 실망했으니 웡에게 내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티가 다 나는 허니의 마음을 웡이 모를리 없다. 그녀의 표정에 웡이 웃으며 움직였다.

"엉망이야. 정말 엉망이야."

책과, 그 옆에 쌓인 책들과, 그리고 한 무더기의 책. 허니는 유지 마법이 풀린 도서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웡을 가만히 바라봤다. 의구심이 들지만 당장 열심히 도울 수 밖에. 허니는 고개를 저으며 책을 웡과 함께 나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있던 사서가 누구였더라. 아마 한참 전에 생텀으로 피했나보군."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물을 살피던 이들도 다 간 마당에 사서가 이곳에 아직까지 남아있을리가. 사실 자신이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나마 웡 덕분에 엄두도 안나는 것들을 정리할 수 있겠네요"

한눈에도 위험한 기운을 내뿜는 책과 정말 기초적인 책들이 한데 뒤엉켜 섞여있다. 사서가 없으니 마법사들은 본 책들을 제자리에 두지 않았고, 책들은 제멋대로 뒤섞어버렸다. 전직 사서였던 웡이 도서실에 도착하자마자 양손으로 얼굴을 쥘 정도라면, 얼마나 난장판인지 두말할 필요도 없을터.

웡이 주축이 되어 허니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허니의 세심한 마법은 웡이 서고를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일에 허니가 먼저 나가떨어지고, 웡이 계속해서 책을 꺼내 분류했다. 웡의 가까운 곳에서 책장에 기댄 허니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눈앞의 일이 바빠 어제 일을 물어본다는 것도 잊고 있었네. 여전히 책과 씨름하는 웡을 바라보던 허니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허니의 말에 웡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책에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허니는 웡이 자신의 말에 긍정하길 바랐다. 하지만 어제 일이 떠오르는지 심란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표정에서 허니는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물어도 괜찮을까요"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허니가 괜한 질문을 했나 웡의 눈치를 보기 시작할 때 즈음, 웡이 입을 열었다.

"대단했지"

".....대단하셨어요?

"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끝내주는 밤이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군"

"거기에다가 끝내주는 밤이었다구요....?"

잠시만 이거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거야. 허니가 최대한 신중하게 웡의 말을 곱씹었다. 웡의 화법은 직설적이지만 가끔씩 허니처럼 생각이 끝없이 뻗어가는 종류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상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웡의 상태를 샅샅이 파악한 것은 아니나, 최소한 웡이 잠들어있던 상태와 던져놓은 어제의 그 옷이라고는 말하기도 어색한 것 등을 보면 정사에 가까운 행위는 조금도 없을게 분명했다.

한 때 동료였고, 전우였으니 말싸움이나 크게했고 바뀐 사람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는 뜻 이겠군. 허니의 머릿속이 팽팽하게 돌아갔고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허니가 대답하자 웡이 책을 내려놓았다.

"자극에 대한 각오 또한 했는지 묻더군"

"....죽음 외에도 고문과 같은...종류의 자극 말씀이신가요?"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겉으로 감정을 완전히 표출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지만 허니는 도서실 내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걸 알았기에 마음것 감정을 토해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스트레인지가 내 허리를 붙잡으며 한 이야기니...."

".......예?"

순간 허니의 입에서는 정말 얼빠진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오 알고 싶지 않았어요. 알고 싶었지만... 알고 싶지 않... 진짜로? 그런 의미야?' 허니는 어제 웡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탈이었다. 심지어는 제가 그 옷을 입는 것을 돕지 않았던가. 비록 눈을 가린채 웡이 말하는 타이밍에 마법을 시전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옷을 입은 웡의 허리를 감으며...어...자극...어...' 허니가 생각하기를 멈추려는 그때였다.

"계십니까"

벽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니는 다급히 빈 손목을 옷자락으로 덮으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몸을 틀었다.

맑은 남자 목소리였다. 웡의 시선이 허니에게 오자 허니는 눈으로 모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도서실 내에서 인기척이 났는데도 그의 물음에 대답이 없자, 남자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냈다.

"생텀 마스터를 보필하기 위해 방으로 먼저 찾아뵈었는데 자리에 안계시더군요, 하여 이곳으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책장 사이로 젊어보이는 마법사가 등장했다. 익숙한 얼굴. 웡에 곁에 선 허니가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술을 입안으로 말았다. 순해보이는 인상에 호감가는 외모를 한 마법사를 웡은 박대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스스로를 소개했다.

"편하게 이안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반갑네"

웡이 손을 내밀자 이안이 웡의 손을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이안, 잘 알지. 허니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이 마법으로 그가 저 가면을 쓰고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안다. 권력욕으로는 손에 꼽는 눈 앞의 남자가 무해하게 웃을때마다 고개가 저절로 흔들리려 했다. 겨우 삼켜넘긴 탄식을 웡이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하게 바라봤다.

"한명이면 충분하네."

"생텀 마스터"

단호한 웡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면 자네를 보낸 누군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는 셈이겠지."

웡은 그 인상과 다르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허니는 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하는 이안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보아하니 웡에 대해 퍽 만만하게 생각했나본데. 실로 이안 정도의 제자에게 웡이 가지는 인상은 한없이 무른 것이 맞았다. 그러니 저 정도의 말 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겠지.

이안의 시선이 흔들렸으나 웡과 허니 두 사랆이 알 바는 아니었다.

"돌아가게"

친절하게 입구를 가리키며 웡은 무표정을 지었다. 뭔가를 더 덧붙이려던 남자는 입을 어물거리다 말고 단호한 웡의 표정에 깔끔하게 입을 다물었다.

작은 목례를 한 이안이 도서실 밖을 향해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저 모습을 보면 어느정도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허니는 그가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일보 후퇴하는 것임을 안다.

정중한 척 인사하고 떠나는 이안을 떠나 보내고 웡과 허니 두사람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히 모아졌다. 도서실의 입구를 바라보며 허니가 내뱉었다.

"귀찮겠는데요"

"귀찮겠군"

두 사람의 말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허니는 문득 생각이 들었는지 웡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설마 이안이 도서실에 들어온걸 알고, 일부러 하신 말씀이신가요?"

"무엇을 말인가?"

"그... 어제..."

허니가 어색하게 웃으며 방금까지 웡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색하게 돌아가는 허니의 손목에 웡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며 대답했다.

"아 어제 스트레인지가 내 허리를 붙잡고 자극에 대한 각오를 했는지 물었다는 그 이야기? 아니면 어제 끝내주는 밤이라고 했던 것?"

"예...예에... 그거요"

웡의 태도는 담담하기 그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거였다고 눈치나 좀 주지. 허니가 부질없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그때 웡이 빠르게 대답했다.

"책을 정리하는데 집중하느라 몰랐네"

음. 여러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허니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질문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아 생각하는 것도.

 







닥스웡 흥해라 

베네딕투


2022.05.22 23:47
ㅇㅇ
허미 내 센세...! 무릎꿇고 정독해야지 ㅠㅠㅠㅠㅠㅠ
[Code: 9fc2]
2022.05.22 23:53
ㅇㅇ
텍스트만으로도 닥스가 웡을 얼마나 끈적하게 시선ㄱㄱ하는지가 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에 비해 웡은 덤덤한 것도 존나 맛있어욧 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9fc2]
2022.05.23 00: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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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개추후감상 시밡ㅌㅌㅌㅌㅌㅌㅌ
[Code: c7f6]
2022.05.23 00: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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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둘이 그래서 뭐했냐고 분위기 뭔데ㅠㅠㅠㅠ웡은 또 왜이렇게 침착하고 아무렇지 않은거지 으아악 흥미진진해
[Code: c7f6]
2022.05.23 00: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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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기대 완전 기대 ㅠㅠㅠㅠㅠㅠㅠ
[Code: ca4a]
2022.05.23 01: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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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둘이 뭐 했는지 보여줘!!! ㅠ
[Code: 627a]
2022.05.23 01: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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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끝내주는 밤을 지낸 사람 맞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대화만 보면 어젯밤도 오늘도 허니만 힘든거같은뎈ㅋㅋㅋㅋㅋ 아 근데 침실?에서 닥스 섹텐 지렸다 진짜... 개좋아 센세
[Code: d292]
2022.05.23 06: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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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떤 끝내주는 밤이었는데요ㅜ!!!!!
[Code: b8b6]
2022.05.23 10: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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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내센세 ㅠㅠㅠㅠㅠㅠㅠ 나도 궁금해죽겠어 ㅜㅠㅜㅠㅜㅜㅜ뭐했는데 자극 뭔데!! ㅠㅠㅠ흑흑 너무재밌어 센세 어나더!!!!!ㅠㅜㅠㅠㅜ
[Code: d1c0]
2022.05.23 16: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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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둘이 티키타카하는데 숨막혀 죽겟구요ㄷㄷㄷㄷㄷㄷㄷ
[Code: eaa9]
2022.05.23 16: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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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너무 잘살려서 눈앞에 영화 장면 보엿자나 센세 실화야?????
[Code: eaa9]
2022.05.23 18: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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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둘이 텐션에 꼴려 디질거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너무 좋다.. 이게바로 행복산가 뭐시단가 그건가.. 휴 너무 좋아서 붕붕이 집 벽이 없어져 부렀내..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 센세 천년만년 억나더ㅠㅠㅠㅠㅠㅠ
[Code: 53fa]
2022.05.24 03: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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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닥스 저 위협적인 분위기 텍스트로 읽는 나붕한테까지 이렇게 전달이 잘되다니ㅠㅠㅠㅠ센세는 천재만재야 진짜 위협적이고 무서운데 그게 너무 섹시하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계속 질문하는 웡도 너무 대단하고.. 과연 자극에도 각오되어있냐는 말 후로 둘이 뭐 했을지 너무 궁금해요 센세ㅠㅠㅠ
[Code: b49b]
2022.05.24 07: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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웡은 왤케 덤덤한건데 허니만 엄한 상상하는 것 같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2d77]
2022.05.26 01: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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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센세 좋다 ㅠㅠㅠㅠㅠ 억나더!!!
[Code: 48e4]
2022.05.30 21: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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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돌아와...ㅠㅠㅠㅠㅠ
[Code: 6592]
2022.06.10 00: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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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돌아와ㅜㅜㅜㅜㅜㅠㅠ
[Code: 73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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