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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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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타탈


피어오르는 새까만 연기와 주변에 널린 사체, 발을 적시는 핏물까지. 폐허로 변한 도시를 바라보며 종려는 터벅터벅 앞으로 걸었어. 불꽃에 새빨갛게 물든 하늘 위로 천리의 주관자가 피워올린 살육의 잔재가 남아 불길하게 스멀거렸어. 종려는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인간들을 두고 무너져내린 궁전을 향해 달렸어. 바깥과 다를바없는 참상에 헛구역질을 하고 궁전 가장 깊은 곳으로 간 종려는 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반려를 보고 눈을 크게 떴어.
차게 식어가는 몸을 품에 안고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감겼던 눈꺼풀이 떠오르고 푸른 눈동자가 종려를 담아냈어. 언제나 높은 소리로 밝게 웃음짓던 자신의 고래가 지금은 심해로 가라앉을듯 위태롭게 느껴졌어. 쉼없이 꿀럭이며 흘러나오는 피를 막아보려 손에 옥홀을 두르고 상처 위를 어루만졌으나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고 상처도 아물지를 않았어. 마지막을 직감한 종려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어.
떠나지말라, 네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애원하듯 매달리자 제 권속인 고래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매일밤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잠을 청할 때마다 불러주던 그 노래가 지금은 너무나 구슬프게 들렸어. 종려는 끝내 숨을 거둔 반려를 품에 안고 숨죽여 울었어. 시신이라도 비단에 곱게 싸서 그토록 좋아하던 바다로 돌려보내 줄 심산으로 품에 안으려는데 그대로 물거품이 되어 흩어졌어.
안된다 울부짖으며 손을 뻗자 눈이 멀어버릴 듯한 빛과 함께 천리의 주관자가 나타났어. 그녀는 마지막 남은 물거품마저 손을 저어 흩어내고 저주를 내렸어. 이 영혼은 천리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우인들의 눈을 틔워주려 한 죄로 가장 미천한 곳에서 다시 태어나 제 뒤를 따르던 이들의 죄까지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그 잔혹한 삶에는 조금의 온기도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평생 사랑하는 자의 손바닥에 제 영혼 한조각도 남길 수 없을 거라는 말에 종려는 심장이 터져버렸어.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심장이 터져 진득한 피를 토해내는 집정관을 보던 천리의 주관자는 혀를 차며 종려의 심장 안에 마신의 심장을 대신할 것을 넣어주었어. 그렇게나 이 우매한 짐승을 사랑하고 있다면 네가 직접 찾아보라 말하면서.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내고 제 반려가 사랑했던 도시를 돌아보는 종려, 아니 모락스에게 마지막 희망 하나가 던져졌어.

혹시 알까, 그 고귀한 사랑이 이 저주를 씻어낼 수 있을지.




깊은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타르탈리아는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자신을 짓누르는 걸 느끼고 눈을 떴어. 여전히 어두컴컴한 바깥과 조각을 빼내고 바른 연고의 진통효과가 다해 욱신거리는 발의 감각이 선명했어.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 바닥을 디디자 저릿한 통증이 몸에 흘렀어. 나직하게 신음을 흘리고 등불을 집어 들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걸었어.
목적지를 생각하고 움직인다기 보다는 말 그대로 발이 이끄는 곳을 향해서 간 끝에 도착한 곳은 종려가 사용하는 처소였어. 뭔가 꺼림칙한 기운에 망설이던 타르탈리아는 조심스럽게 처소의 문을 열고 복도에 발을 디뎠어. 끼익거리는 나무 바닥의 소리까지 불길하게 들려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어. 마침내 종려의 침실 앞에 다다른 타르탈리아는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어.
종려의 머리 위로 솟은 한쌍의 뿔이나 바닥에 널브러진 기다란 꼬리는 둘째치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눈물을 쏟아내며 울고 있다는 것에 놀랐어. 타르탈리아는 어쩔줄 모르고 망설이다 침대로 올라가 떨고 있는 종려의 머리를 살짝 들어 제 허벅지 위에 올렸어. 푹신하지도 않고 딱딱하겠지만 고향에서 악몽을 꾸는 동생이 있으면 늘 이렇게 해주었거든.

"울지마요. 쉬이.."

뭐가 그렇게 슬플까. 뭐가 그렇게 아프고 힘들어서 이렇게나.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쓸어주다 몸을 숙여 끌어안고 그의 입술 위에 짧에 키스했어. 키스라 부르기도 민망한 스쳤다는 것에 가까운 행위였으나 그것 만으로도 종려의 표정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아 다행이었어. 눈물이 퐁퐁 솟아나는 눈가를 엄지로 문질러 닦아주고 가슴을 토닥이던 타르탈리아는 입을 열고 나직하게 노래를 불렀어.
잘부르는건지 못부르는건지 기준점이 적어서 판단해본 적도 없어. 이 노래도 그냥 알고 있을 뿐이고 무슨 의미로 불렸던 건지 잘 몰라.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내리며 그의 평온함을 기도했어. 이 밤이 더이상 잔인하지 않도록, 나를 사랑해주는 이 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달래주다 깜빡 잠들어버린걸까. 타르탈리아는 푹신하고 따뜻한 느낌에 몸을 비틀다 더 짙은 온기를 찾아내고 그것에 더 많이 닿기 위해 파고들었어. 그러자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어. 깜짝놀라 눈을 반짝 뜨고 보니 종려가 자신을 품에 안은 채 미소짓고 있었어. 깜짝 놀라 종려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자 종려가 손을 뻗어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고 입술과 뺨을 살살 어루만졌어.
나른한 웃음과 살짝 벌어진 옷깃 사이로 보이는 단단한 가슴과 금빛이 도는 매끈한 살갗에 타르탈리아는 얼굴을 붉히고 급히 시선을 피했어. 종려는 개의치않고 타르탈리아를 품에 안아 이마와 뺨에 연신 입을 맞췄어. 중간중간 잘 잤느냐는 인사를 섞어가면서. 힐끔 보니 종려의 눈꼬리에 여전히 눈물이 한방울 맺혀있었어. 타르탈리아는 손을 올려 그것을 닦아주고 손 끝에 묻어난 눈물을 어쩔까 고민하다 입으로 가져갔어.
이번에는 종려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어. 벌어진 입술사이로는 탄성이 흘러나왔고. 뭔가 잘못한건가 싶어 눈치를 보는데 종려가 미안하다 사과를 하더니 갑자기 어깨를 잡아 침대에 도로 눕히고 입술을 부딪혔어. 깜짝 놀라 버둥거리자 아랫입술을 살짝 물어 입을 벌리게 했어. 통증에 신음하느라 입을 열기 무섭게 진득하게 혀를 얽어오는 짙은 키스 때문에 타르탈리아는 겁을 먹었어.
저항하지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하니 두려워한다는 걸 눈치챈 종려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어. 푸른 눈동자 가득 어린 물기와 겁을 먹어 희게 질린 얼굴을 본 종려는 타르탈리아를 끌어안고 미안하다 사과했어.

"미안합니다 타르탈리아. 내가 너무 마음이 급해서.."
"아, 우으.."
"놀랐군요."

타르탈리아는 뭐라 대답도 못하고 떨기만했어. 황후라 했고 또 반려라 하는데다 사랑한다는 말도 표현도 아끼지 않는 종려라서 어떤 방식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부딪히니 덜컥 겁부터 났어. 싫다거나 그런 것과는 다른 느낌이야. 그냥 받아들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어.
종려가 미운것도 아니고 이 사랑이 싫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타르탈리아는 덜컹거리는 제 마음에 더 크게 놀라 바들바들 떨기만 했어. 그만 떨고 종려에게 괜찮다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지. 종려는 전부 이해한다는 듯이 웃어주고 괜찮다 속삭이면서도 무척 슬픈 눈을 했어. 그 눈이 안타까운데 차마 입맞춤을 되돌려 줄 용기는 생기지 않아 타르탈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고여있던 눈물만 와르르 쏟아냈어.
종려는 울지 말라는 말 대신 미안하다는 사과만을 늘어놓았어.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걸까.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가슴에 기대고 인간의 것과는 다른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듯한 심장소리에 집중했어. 바위가 부서진다면 이런 소리를 낼까. 잘은 몰라도 자신의 행동이 종려를 크게 상처입혔다는 것 만큼은 확실했지.


아침식사를 따로하고 종려는 절운간의 선인들과의 만남 약속을 위해 잠시 떠났어. 선계에서 말을 나눌 예정이라 짧아도 3일은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라는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꼭 끌어안아 준 뒤 길을 떠나는 걸 배웅했어. 홀로 궁을 지키면서도 늦잠을 자거나 할 여유는 없었어. 종려는 함께 하면 도움이 될 거라며 응광과 독대하는 자리를 마련해두었거든.
일정에 따라 자신을 찾아온 응광을 마주하니 느낌이 묘했어. 궁전에서 지내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은 선인이거나 선인의 핏줄이 섞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인간사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들이라 그래도 대하기가 편했는데 이렇게 신분이 높은 인간과 독대하는 건 처음이었지. 타르탈리아는 응광을 하대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입으로는 그러지 못했어.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렸고 뒤늦게 이게 실례라는 걸 떠올렸어.
아차하는 표정마저도 얼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나버렸지. 그 탓에 응광이 작게 소리내어 웃었어. 이런 짓을 하면 종려씨에게 민폐라는 생각에 뒤늦게 하대를 하며 천권이라 불렀으나 응광의 웃음소리만 커졌어.

"황후마마가 이렇게 사랑스러우니 바위같은 암왕제군께서 푹 빠지실만도 하네요."
"아..."
"저를 부르실 때에는 천권이라는 호칭이 아니라 응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셔야 합니다. 직책으로 부르는 건 공적인 업무를 다같이 보는 자리에서 가능한 일이지요. 그 칭호 자체가 하늘같은 권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마마께서 황후가 아닌 스네즈나야의 기사단장이라면 정당하나.."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다."
"후후. 앞으로는 응광이라 부르세요."
"용건이 있다고 들었다."
"제군께서 저에게 물건을 하나 구입하셨습니다. 황후마마께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응광은 타르탈리아의 앞에 비단으로 싸인 자개함 하나를 내밀었어. 열어보니 푸른빛이 따스하게 감도는 귀한 반지가 타르탈리아를 반겼어. 응광은 반지가 치유의 힘이 있어 거칠고 흉이 진 손을 서서히 낫게 해줄거라 했어. 특별한 힘을 가진 물건이니 값어치가 상당할 게 틀림없었지. 선물로 받았다고 해도 부담스러운 물건이었어.
값은 어떻게 치러야하냐 물으니 응광은 제군께서 따로 어음을 발행해주실 예정이라 답했어. 감사하긴 한데 마음에 짐이 더해지는 듯 한 것도 사실이라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어. 타르탈리아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응광이 찻잔을 톡톡 두드리다 입을 열었어.

"제군께서 주시는 선물인데 전혀 기뻐보이지가 않으십니다."
"사실 이런 건 좀 부담스러워서.."
"사랑하는 이에게 받는 것인데도요."
"..."
"제가 너무 캐물었군요. 나름의 사정이 다들 있을텐데."

응광은 생긋 웃어주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고 했어. 뭔가 싶어 물어보니 응광은 깜짝 놀랄만한 걸 알려주었어. 타르탈리아과 황후의 직책을 수행함으로서 대가로 받게 될 거액의 보수 말이야. 우선은 제군께서 관리하신다 하였으나 금전에 대한 권리는 오롯이 황후에게 있다면서.
타르탈리아는 당황했어. 액수가 얼마나 되나 물으니 응광은 주에 200만 모라가 지급될 예정이라고 했어. 타르탈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어. 주에 200모라라니, 그만한 액수의 돈은 손에 만져본 적도 없는데. 황후라고 해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어서 그 돈을 받아도 되는건가 고민스러웠어.
타르탈리아는 응광에게 여러가지를 물었어. 이 돈을 주는 이유라던지 이 돈으로 뭘할 수 있는지까지. 사용처는 오롯이 타르탈리아의 자유였어. 그리고 황후로서 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이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하자 응광이 비싯 미소를 지었어. 제군께서 이 자리를 주선하신 이유를 잘 알겠다며.


의문을 표할새도 없이 타르탈리아는 종려의 서재에 들어와 앉아 종려가 처리하던 서류를 정리하는 법을 배웠고 리월항의 역사와 상인들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 응광에게 들어야했어. 그 방식에 맞춰 종려라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고민해 중요한 일 몇가지를 도맡아야만 했어.
하나같이 어렵고 신경쓸 것이 많은데다 타르탈리아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들도 많았어. 이게 정말 황후의 일이냐 의문을 품자 응광이 고개를 끄덕이고 타르탈리아의 턱 끝을 잡아 올렸어.

"황후는 제군의 기쁨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제군이 계시지 않을 때 제군을 대신하여 많은 일을 처리해야만 하죠."
"굉장히 시의적절하게 느껴지는데.."
"직접 가르치셔도 되는데 저한테 어린 황후의 교육을 떠맡기시다니."
"..."
"침울한 얼굴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것도 꽤 즐거우니까요."

타르탈리아는 펜을 꼭 쥐었어. 종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 서운했어. 이렇게 중요한 일이면 직접 알려주는게 낫지 않았나 싶어서. 물론 응광의 생각은 달랐어. 제군이 굳이 황후의 교육을 이쪽에게 맡긴 이유를 알 것도 같았어.
내용이 너무 어려운지 미간을 찡그리고 펜 끝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타르탈리아는 응광의 눈에도 무척 귀여웠어. 이런 얼굴로 실수를 하거나 수업이 싫다고 투덜대면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봐주고 말겠지. 자신이 이런 상태인데 황후에게 푹 빠진 제군이시라면 저 울먹이는 푸른 눈만 봐도 수업을 그만두고 품에 끌어안아 입을 맞추기 바쁠거야.
능글맞기는. 응광은 수업에 대한 비용을 아주 비싸게 달아 나중에 따로 매겨두겠다 다짐했어. 그리고 몬드와의 교역품 목록과 상단의 계약서를 집어든 채 어쩔줄 몰라하는 타르탈리아에게 다가가 함께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어. 주요하게 살펴야 하는 내용들, 그리고 간과하기 쉽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할 것들까지.
상단 간의 계약서는 거의 비슷비슷한 내용이기에 눈에 유별나게 띄는 것이 아니라면 금방 형식을 익힐 수 있어. 몬드는 주류업이 유명해서 주로 술이 들어오는 곳이지. 국가별로 특산품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해. 수입품 혹은 수출품의 목록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으니까.
길고 지루한데다 어려운 내용일텐데도 타르탈리아는 얌전히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수업에 임했어. 필기를 하고 응광의 지시대로 서류를 분류하거나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쳤고 간혹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의견을 묻기도 했지. 꽤나 모범적인 학생이라 응광도 만족스러웠어. 그래도 몰려오는 졸음은 어쩔 수 없는 듯 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이기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조는 타르탈리아의 모습에 응광은 작게 웃었어. 종려의 책상 끄트머리에 올려진 폰타인제 카메라를 들어 초점을 타르탈리아에게 맞췄어. 각도를 잡아 찍고 나온 사진을 보니 곤히 잠든 귀여운 볼살이 잘 보이는 예쁜 얼굴이 담겨있었어.
응광은 사진을 따로 챙겨두었어. 제군에게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좋은 선물을 손에 쥔 응광은 차와 다과를 가져온 시종에게 황후께서 많이 피곤하신듯 하니 방으로 안내해 낮잠을 주무시게 해드리도록 하라 일러두었어. 칠성의 몇몇 어른들은 제군께서 예의나 체면도 뒤로하고 황후를 월해정 회의에 데려온 걸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어.
황후가 아무것도 모르는 설원 위 온실 속의 꽃이면 어쩌냐면서. 납득할만한 걱정이라 어느 정도는 타르탈리아에 대한 우려가 있던 응광은 오늘의 만남이 타르탈리아라는 사람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생각했어. 타르탈리아는 온실 속의 꽃이라기 보다는 어항 속 물고기 같았어.
어항이 운래해 전반이고 타르탈리아는 커다란 어항 속을 어떻게 노니면 좋을지 모르는 어린 고래였어. 가진 잠재력은 아주 우수하지. 그걸 잘 틔워줄 인연이 다름아닌 암왕제군이라는 건 타르탈리아에게도 엄청난 행운일거야. 다만 한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견해였어.

"지나치게 스스로를 저평가하고 있어."

응광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어. 타르탈리아는 매사에 부정적인 편이고 시야가 넓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제군이 오래지 않아 자신을 버릴거라 굳게 믿고 있었어. 황후가 된 건 그저 제군의 눈에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고 그가 좋아하는 신선함을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 내쳐질거라고 했지.
그래서 너무 마음을 주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것 같았어. 제군에 대해 말할 때마다 눈을 빛내고 얼굴을 묘하게 붉히면서도 푸른 눈동자에 깊은 슬픔이 어리는 걸 보며 응광은 복잡함을 느꼈어. 자신이 본 제군은 그 반대였는데 말이지. 무엇보다도 타르탈리아는 자신이 믿는대로 버려지기 전에 다른 방식으로 제군을 떠날 궁리를 하고 있었어.
두사람 사이의 계약에 대해 제 3자인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타르탈리아가 어떤 방식을 택하든 그게 옳은 길은 아닐거라는 직감이 들었지.


-


부끄럽게도 수업을 듣다가 깜빡 졸고 말았어. 타르탈리아는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야 눈을 떴고 응광에게 수업을 들으며 필기한 것을 복습했어. 검술 연습도 해야하는데 그건 제군이 계시지 않아 취소했으니 식사 전까지 좀 더 쉬라는 말만 들었어.
타르탈리아는 붕대에 잘 싸인 맨발 위를 쓸어보다 침대 옆에 놓아둔 종려의 신발을 주워들었어. 일부러 세탁까지 손수해두었는데 언제 돌려주어야 할지 계산을 못하고 있어. 그냥 바라만 보다 손으로 쓸어보고 다시 제자리에 두었어. 종려가 전에 준 단풍잎은 편지지에 곱게 싸두었지.
시종들은 다음주 쯤에 스네즈나야로 향하는 상선이 떠오른다고 했어. 때에 맞춰 선물과 함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낼 생각이야. 원래는 편지만 보내려고 했는데 황후의 앞으로 지급되는 거액의 모라가 있다고 하니 그걸로 선물을 조금 사서 보내는 정도는 괜찮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무 많이 써서는 안되었지. 왜냐하면 타르탈리아는 돈을 모아야 했으니까.

"..이 몸은 얼마나 주셨을까."

타르탈리아는 노을이 스며든 자신의 하얀 살 위를 쓸어보았어. 어느 정도의 액수였길래 여왕님께서 계약에 응답하신건지 감도 잡히지 않아. 그러나 분명한 액수가 매겨져 있는건 틀림없어. 그렇다면 타르탈리아는 공정하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지. 아까 응광은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에 대해서 알려주었어.
이 황후라는 자리에 계약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모든게 단순해지지. 타르탈리아는 거액을 주고 황후자리에 앉혀진 장난감이야. 그럼 이 자리를 다시 사면 그만이야. 정확히는 계약을 해지하는 것에 대한 위약금을 지불하면 되는 일이지. 타르탈리아는 두 손을 모아 가슴 위를 꾹 눌렀어.
돈을 모아서 종려씨에게 주자. 그리고 나를 다시 돌려보내달라고,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하면 되는 일이야. 단순한 결론인데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어. 다시 시큰거려오는 눈가를 꾹 짓누르고 타르탈리아는 종려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밀어냈어.
그 남자가 주는 애정은 죽도록 달지만 입에 대서는 안돼. 여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지. 비참한 인생에서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자신의 위치였어. 타르탈리아는 리월의 황후가 될 자격이 없어. 그리고 나아가서는 제군의 사랑을 받는 연인이 되어서도 안돼. 이유가 따로 필요할까? 스네즈나야에서도 가장 비천한 취급을 받는 집안인데 그 암왕제군의 반려라니.

다시 스스로에 대해 상기시킨 타르탈리아는 깊이 가라앉은 푸른 눈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보다 시종이 부르는 소리에 맞춰 침소 밖으로 걸어나갔어. 타르탈리아가 서있던 자리 아래로 하얗게 얼어붙은 눈물방울이 가득 쌓여있다가 리월의 온기에 이기지 못하고 산산히 부서졌어. 마치 타르탈리아의 마음처럼.





 
2022.01.15 20: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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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센세입갤
[Code: 054c]
2022.01.15 2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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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둘다 상처가 너무 깊어보여서 둘이 같이 보듬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ㅠㅠㅠㅠㅠ 하 너무좋아.. 너무슬픈데 너무재밌어요..
[Code: 054c]
2022.01.15 20: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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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센세
[Code: e88d]
2022.01.15 20: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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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타탈 과거 기억 못해서 계약이라고만 생각하는거 맴찢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88d]
2022.01.15 20: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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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하기만 할 줄 알았더니 첫단추가 잘못 꿰여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종려가 타탈 해감시켜 주겠죠 센세ㅠㅠㅠㅠㅠㅠ
[Code: 9d03]
2022.01.15 20: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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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을 읽은 내내 내 심장이 너무 이프다ㅠㅠㅠㅠㅠ 너무 달달하면서도 자낮한 타탈 너무 안쓰러움… 저런 생각으로 돈 모아서 황후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위약금 주면서 종려한테 말하면 종려 엄청 상처받을것같다ㅠㅠ 타탈이 돈 다 모으기 전까지 종려가 타탈 해감해줄 수 있을지 너무궁금하가
[Code: 692c]
2022.01.15 20: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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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종려 달래주는 타탈 보고 찌통반 달달반이었다가 타탈이 계약 해지하자고 말할거 생각하니까 찌찌 다 뜯겼어요 센세ㅠㅠㅠㅠ 그전에 종려가 알아채주길...
[Code: 171d]
2022.01.15 20:47
ㅇㅇ
어흑 종려랑 타탈 둘 다 왜이렇게 짠하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냥 평생 행복하게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센세ㅠㅠㅠㅠ...
[Code: a4bc]
2022.01.15 20: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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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센세오셧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타탈악 ㅠㅠㅠㅠㅠㅠ 종려 마음 온전히 받아주면 좋겠는데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거기가니자리라고ㅠㅠㅠㅠㅠ
[Code: 8b7c]
2022.01.15 20: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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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타탈이 돈모아서 종려에게 몸값 치르겠다고 하면 종려 어째ㅠㅠㅠㅠㅠㅠ 종려 맘이 찢어지겠다고ㅠㅠㅠㅠ
[Code: 6004]
2022.01.15 21: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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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종려한테 돌려보내 달라는 타탈 생각하면 벌써 엎어져서 우는 중이에요 센세ㅠㅠㅠㅠㅠㅠㅠ
[Code: 91f3]
2022.01.15 21: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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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행복하질 못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1f3]
2022.01.15 21:23
ㅇㅇ
모바일
이마팍팍치는중...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e69]
2022.01.15 21: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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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서로가 너무 필요한데ㅠㅠㅠㅠㅠㅠ 단짠단짠 넘조아요
[Code: b07a]
2022.01.15 23: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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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탈 오이리 자낮이냐 천리가 내린 저주때문인가ㅠㅠㅠ 타탈 떠날거 생각하니 나도 찌찌가 아픈데 종려는 오죽할까ㅠㅠㅠ 타탈아 종려랑 행복해야지ㅠㅠㅠㅠㅠ
[Code: 3c9e]
2022.01.16 00: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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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 타탈 넘 힘겹게 산 데다 가족들 걱정되어서 ㅠㅠㅠㅠㅠㅠ 종려가 어떤 신인지 알면 저런 걱정 할리가 없는데 ㅠㅠㅠㅠ 계약의 신이 맺은 계약인데 ㅠㅠㅠㅠㅠㅠㅠ 근데 종려 겨우 타탈 찾았는데 엇갈리면 ㅠㅠㅠㅠ
[Code: a9ce]
2022.01.16 01: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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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낮타탈 맛집이네요 센세... 근데 넘 가슴이 아프다ㅠㅠㅠㅠ
[Code: d39a]
2022.01.16 16: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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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인데 넘 슬프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타탈 자낮해서 종려 못 믿는거도 슬프고 종려도 계속 악몽 꾸는 거 너무 슬퍼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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