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어서 쪘는데....길어졌네 헤헤.

다 주의!











레골이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긴 했는데 말을 못했어. 선천적으로 뭐가 잘못됐는지 단순한 음 같은 건 낼 수는 있는데 말로 되지는 않는 거야. 레골이 위로 줄줄이 시커먼 형제들만 셋인데 막내기도 하고 한 덩치 하는 형들이랑 비교하면 애가 워낙 순하고 예쁘장하니까 부모는 금이야옥이야 집 안에서만 곱게곱게 키웠지. 나중에 어느 정도 크고 오메가 형질까지 발현되니까 더 싸고돌겠지. 레골이가 사는 나라는 오메가를 귀하게 여겼거든.


레골이가 성인식 치르기 전부터, 말을 못하는 것 빼면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으니까 혼담도 제법 들어오곤 했어. 그럴 때쯤에 전쟁이 크게 나버린 거야. 전방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제법 잦아진다 싶더니 아주 제대로 터진 거야. 인접한 국가 중 하나였던 머크우드에서 영토 확장에 나서서 레골이가 살던 나라뿐 아니라 주위의 중소국을 다 쓸어버린 거지. 그 나라는 원체 호전적이고 무예를 아주 숭상하던 나라긴 했지만 이번 전쟁들을 치를 때마다 치밀한 전략을 내세워 어린애들 땅따먹기 하는 마냥 손쉽게도 다른 나라들을 멸망시켰어.



오로페르는 아주 흐뭇하게 제 아들을 바라봤어. 제국을 이룰 정도로 연이은 승전을 올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아들, 스란두일 덕분이었지. 전장에서 날뛰며 적군의 목을 베어 넘기는 모습을 보면 제 자식이긴 해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냉혹했지만 일국의 차기 황제감에 아주 적합하다 못해 넘치는 아들이었지.



전쟁 탓에 위의 형들은 군에 나갔고 오메가였던 레골이는 군에 갈 수 없었기에 부모와 피난길에 올랐어. 평화롭기만 했던 일상은 불타고 살풍경한 나날로 바뀌어버렸어. 전쟁은 그다지 길게도 이어지지도 못했어. 드세게 밀고 들어오는 스란두일의 군대를 막아설 수 있는 건 안타깝게도 없었어. 그저 얼마나 버티느냐 시간싸움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지. 그 전쟁에서 레골라스는 부모를 잃었고 겨우 목숨부지한 식솔 몇과 함께 노예로 끌려갔어. 전쟁에 나섰던 형들도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어. 그저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레골라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레골라스는 곱게만 자란 터라 갑자기 변한 가혹한 환경에 결코 적응하지 못했어.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슬픔과 남은 가족들의 생사도 제대로 모르는데다가 나라가 멸망해버렸다는 충격에 끌려가는 내내 앓았어. 레골이가 살던 나라에서 제국으로 가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 마침내 도착한 제국은 기후부터 달랐어. 타국보다 겨울이 긴 나라인 만큼, 레골라스가 자랐던 곳보다 몇 개월은 빨리 매서운 삭풍이 몰아닥쳤지. 레골라스는 변해버린 기후로 자신이 어디로 끌려온 건지 알아차렸어. 차갑고 매서운 북쪽의 나라.



오로페르와 스란두일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황제와 황태자를 환호하며 맞이했어. 황제까지 나선 이번 전쟁으로 온화한 기후의 남쪽으로 수도를 이전해도 될 만큼 몇 배로 영토를 넓혔으니 팍팍했던 삶은 전과 비교도 안 되게 풍족해질 게 자명했어. 하나같이 기대에 들뜬 백성들의 얼굴들을 살피면서 오로페르는 한껏 기분이 고조됐어. 자신의 왕국은, 아니 제국은 이제 번영할 일만 남았지. 이제 저 아들놈 혼인까지 시키면 빨리 황제 자리나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으로 앉아 편히 지낼 생각이었어. 스란두일의 성정상 제 아비 말도 잘 안 듣긴 할 테지만 급한 일도 아니고, 오로페르의 입가에 걸린 호탕한 웃음은 가실 줄을 몰랐지.



복속시킨 나라의 수도 많았기 때문에 전쟁으로 잡혀온 노예들만 해도 어마어마했어. 노예들은 출신국의 신분에 따라 배정되는 곳도 달랐기에 레골라스는 함께 붙잡혀 왔던 이들과도 갈라져 각기 다른 곳으로 보내져야 했어. 레골이는 귀족의 자제였고 그 때문에 궁으로 보내졌어. 노예가 오메가인데다가 미모가 뛰어나단 건 득 될 게 하나 없어. 일반 노예가 더 낫지, 바로 침실노예로 보내지는 것 보다야.

   

레골라스가 침실 노예로 보내진 곳은 당연하게도 스란두일이 기거하는 궁이었지. 다행이라고 할지 레골이는 바로 스란두일의 밤 시중을 들진 않았어. 레골라스 말고도 침실노예는 많기도 했고 스란두일이 침노를 자주 찾는 편은 아니었거든. 레골라스는 이전에 해본 적 없던 궂은 일 하는 것에도 적응하느라 바빠서 하루가 끝날 쯤이면 녹초가 됐기에 밤에 불려나가지 않고 잠만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어. 하루하루가 고되어 부모와 형제 얼굴을 떠올리는 것조차 사치였어.






두어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레골라스는 자신처럼 침노로 온 많은 이들 중에서도 오메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명 안 된다는 걸 알았어. 그리고 그 오메가들이 힛싸가 오면 그 때 밤시중을 든다는 것도 알아차렸어. 하지만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에 속했어. 힛싸가 와도 스란두일이 노예를 찾지 않기도 했거든. 그러면 힛싸 온 침노는 격리된 방에서 꼼짝없이 혼자서 그걸 다 버텨야 했어.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약이나 억제제는 당연히 지급되지 않았어. 노예인걸. 레골라스는 점점 초조해졌어. 자신은 끌려오는 내내 앓느라 몸도 좋지 않았고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버텨내느라 힛싸를 몇 번 건너뛰었어. 그건 힛싸가 다시 오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몇 배로 격렬하게 온단 뜻이야. 하지만...그렇다 해도 침실 시중을 드는 것 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 언젠가 주인의 밤시중을 드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어. 끔찍해도 너무 끔찍했어. 자신의 부모도, 형제도, 나라까지도 그 모든 것을 앗아간 그 자의 밑에서 다리를 벌리라니.


레골이는 침실노예들을 맡고 있는 시종장에게 혹시라도 억제제라도 구할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지만 그건 되레 시종장에게 눈도장만 제대로 받고 소득이 없었어. 안 그래도 시종장이 레골이를 아직 스란두일에게 보내지 않았던 건 궁으로 온 초기에 레골이가 내내 비실대니까 건강이 좀 나아지면 보내려 했던 거거든. 그런데 레골이가 먼저 억제제 얘기를 꺼내는 거 보면 보내도 되겠다 싶은 거지. 아이고 레골이 큰일났다ㅠ



스란두일이 침실 노예를 따로 안 찾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취향이 까다로워도 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무 까다로워서임. 킹! 오브! 까다로움! 어느 정도냐면 드으으으으럽게 까다로운 취향이 그 혈기왕성한 나이의 성욕도 이겨먹어서 잦잦 자체가 적을 정도임. 뭣모르는 신하들만 우리 황태자님은 금욕적이기까지 해...!! 하며 멋대로 존경심까지 가졌지. 원래 황실 자손이라면 혼인해도 진작 했어야 하는 나인데도 아직까지 미룬 것도 자기 취향에 맞는 오메가가 없어서임. 아버지 오로페르한테 까이고 까여도 그 부분만큼은 마이웨이 개쩖.



시종장은 스란두일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대충은 알지만 아직까진 스란두일이 길게라도 침실로 들였던 오메가나 베타가 없어서 벼르고 있음. 이번에야말로 스란두일이 마음에 쏙 들어할 노예를 올리고 말거라고 충성심에 불탔지. 나름 자존심이 달린 문제라고 여겼나 봄.


레골이는 힛싸가 언제 올지 몰라서 계속 스트레스에 시달렸지. 오더라도 어떻게든 밤에 따로 불려나가지만 않으면 될 텐데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매일 마음만 졸였지. 하지만 시종장은 이미 다음에 올릴 노예를 레골이로 점찍어 놨음. 힛싸가 오든 말든 스란두일이 찾으면 레골이 바로 보내기로 마음먹은 거야. 그리고 며칠 안 가 레골이 힛싸가 찾아와버림. 아침부터 으슬으슬하다 싶더니 아랫배부터 번지는 기운이 심상찮음. 항상 매의 눈으로 레골이 스캔하고 있던 시종장이 그걸 놓칠 리 없지. 스란두일이 따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스란두일 직속의 상급시종관에게 넌지시 힛싸 온 노예가 있는데 밤에 준비하겠다고 알리지. 되게 열성적임. 상급시종은 시종장이 하도 그러니까 일단 데려오라곤 해. 침실로 들였다가 스란두일이 싫다 그러면 내보내면 되니까. 안 그래도 주인의 침상을 덥힐 노예를 들인지도 한참 지나기도 했고.


시종장은 오후부터 레골이 따로 빼놨어. 레골인 자기한테 힛싸 오니까 다른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좀 돌아가는 일이 이상해. 열이 슬슬 올라서 점점 정신도 없어지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종들이 오더니 자신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는 거야. 이쯤 되면 눈치 채지. 몸에 힘도 들어가지도 않고 제대로 서있는 것도 힘들어서 목욕에 얇은 침의까지 입혀도 이렇다 할 반항도 할 수가 없었어. 노예들이 거처하는 곳과 스란두일이 쓰는 방까지만 해도 거리가 상당해서 시종 중 하나가 레골이를 업어서 옮겼어. 레골이가 할 수 있는 건 흘러나오려는 신음만 꾹 틀어 참는 거였지. 뒤도 점점 젖어드는 것 같고 앞으로 닥칠 일은 두렵기만 하고 미칠 것 같았지.




높고 푹신한 침대 위에서 눕혀지고 나자 정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입 안에 작은 병에 든 이상한 액체까지 흘려 넣어주고 시종들이 물러가자 방 안엔 레골라스 혼자 남았어. 뭔지도 모르는, 입 안에 남은 생소한 맛이 불쾌했지만 그것도 곧 잊어버렸어. 여기까지 지나쳐온 복도도 문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고 방이 크다는 것 말고는 뭘 더 살필 여력도 없었지. 어린 강아지가 낑낑대는 것 같은 신음만 참다못해 나오면 그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어. 스란두일이 와서 내보내라고 하기만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지만 어떨지 모르겠어. 이제는 은밀한 곳에서 간질간질한 감각이 타고 올라오고 열에 들뜬 몸이 이불에 닿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이 되자 레골라스는 훌쩍이기 시작했어.





스란두일은 바빴어. 갑자기 몇 배로 늘어난 영토를 관리하고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기존에 있던 법제를 다시 뜯어고치는 등등 매일같이 신하들과 논의하고 처리할 게 너무 많았지. 오로페르가 네가 물려받을 나라니 미리 예행 연습한다 생각하고 네가 직접 해두는 게 나중에도 편할 거라고 이것저것 스란두일에게 넘긴 부분이 많아서기도 했지. 덕분에 늦은 저녁이나 되어서 스란두일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어. 방에 가까워질수록 풍겨오는 향이 평소와는 달라서 스란두일은 문을 열어주는 시종에게 방에 피워두던 향을 바꿨냐고 물었어.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지. 뭐야, 따로 지시한 적도 없는데 귀찮게. 스란두일은 살살 자신을 구슬리는 듯한 시종을 뒤로 하고 가장 안쪽에 있는 침실로 들어갔어. 흐음, 향은 제법 좋네. 이 정도면 히트사이클이 제대로 왔을.....


스란두일은 이불을 젖혀 든 상태로 잠시 서 있었어. 그리고 시종장에게 상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지. 왜겠어, 그 까다로운 취향을 제대로 후드리 챱챱 걀걀걀 갈아서 미끈하게 빚어 만든 것 같은 이가 눈앞에 있으니까. 울었는지 눈가는 발갛고 열이 올랐는데도 피부는 하얗고 눈은 파랗고 머리는 노랗고 총천연풀칼라 색채대비가 완전한 레골이.




레골라스는 누가 온 지도 몰랐어. 덥고 머릿속은 몽롱하고 귓가에 웅웅거리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아. 물속에 잠겨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앓느라 움직일 때마다 살갗에 닿는 옷깃과 이불의 마찰조차 지나치게 크게 울리는 것 같아. 아래는 아예 푹 젖었고 아무 접촉도 없었는데도 팽창한 것 때문에 갑갑하고, 그리고, 뭐라도 좋으니까 안에서 자꾸 살살 울려퍼지는 간지러운 느낌 같은 걸 없애줬으면 좋겠어. 괴로워.


갑자기 숨쉬기가 수월해졌어. 입술에 뭐가 와 닿고 그게 뭔지 미처 알기도 전에 부드럽게 밀려드는 걸 레골라스는 기갈 들린 사람처럼 급하게 쪽쪽 빨아들였어. 너무 목이 말랐어. 닿은 곳은 아주 일부분인데 전신에 다 엉기어 붙어있던 괴로운 열기가 부드럽게 밀려나가는 것 같아. 조금만, 좀 더, 아직 부족해. 하지만 입술에 닿아있던 건 금방 떨어져 나갔고 레골라스는 그게 너무 아쉽고 안타까워서 손을 뻗었어. 눈물로 흐릿한 시야에 누군가가 앞에 있다는 걸 알았어. 뭐라고 물어오는 것 같긴 한데 잘 안 들려. 들었다 해도 제대로 대답할 수도 없는 상태고 어차피 자신은 말을 할 수도 없는데 자꾸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다시 입술에 알파의 체온이 닿아오자 레골라스는 너무 기뻐서 흐흥하는 콧소리까지 냈어. 입술만 아니라 얼굴도 어깨에도, 등허리에도 닿아오는 다정한 감촉에 한순간에 괴롭던 기운이 다 몰아내지고 기분 좋은 감각만 남았어. 몇 번 어루만져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만족감이 차올랐어. 와 닿는 손길은 점점 대담해졌고 예민한 부분에 부러 자극이 가해지자 레골라스는 목을 울리며 파드득 몸을 뒤챘어. 짜릿하고 갑자기 왔다가 도망가는 쾌감은 점점 빈도가 잦아졌고 레골라스는 이제 다른 의미로 울기 시작했어.

       

치부로 내려간 손은 어려울 것도 없이 희롱을 거듭하다가 질척하게 젖어있는 하의를 벗겨냈어. 희고 그나마 살집이 있는 둔부 사이는 달큰한 내가 물씬 나는 액으로 젖어있었어. 한껏 액을 솟아낸 다물린 곳을 조심스럽게 문지르던 손가락은 대담하게도 안으로 파고들었지. 대번에 끙끙대는 막힌 신음이 나자 스란두일은 아직도 얽혀있던 입을 풀어냈어. 레골라스의 빨갛게 부푼 입술 사이로 단숨이 색색 새어나오고 이마가 찌푸려졌어. 이정도로 애액을 쏟아 내놓고도 아직 아래는 다 안 풀려있어. 스란두일은 잠시 레골라스를 살피다가 알파 페로몬을 강하게 풀어버렸어. 왈칵 쏟아지는 액이 손 끝에 닿고 안을 흔들듯 누르던 손이 좀 더 빠르게 움직였어.

      

"흐아....아..! 으응, 흥... "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예쁘게도 우네. 흥분과 기대에 심장이 쿵쿵 뛰었어. 오랜만에 맛보는 감각이야. 마치 전장에서 적의 목을 베어 넘길 때처럼, 아주 자극적이고 날뛰는 감각. 더 기다릴 것 없이 양 옆으로 다리를 벌리고 사이에 자리를 잡았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좁고도 뜨거운 안으로 밀고 들어갔어. 스란두일은 자신의 것에 달라붙는 내부의 열기를 놓치지 않고 맛보았어. 만족감에 저절로 목울대가 그르릉 울렸어. 레골라스는 아래를 가득 벌리고 들어오는 이물감에 몸을 자꾸 뒤척이며 벗어나려고 했어. 하지만 그건 생각뿐 제대로 되진 않았지. 스란두일은 이리저리 유려한 곡선을 만들면서 레골라스의 휘는 몸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 레골라스 위로 상체를 엎드리자 본능적으로 알파에게 안기어 드는 팔도 마음에 들고 몇 번 움직이자마자 자지러지면서 우는 소릴 내는 것도 흡족했지.



스란두일은 생각을 바꿨어. 시종장에겐 벌을 내릴 거야. 이런 애를 숨겨두고 여태껏 뭐 한 거야?


레골라스는 스란두일의 침실로 간 이후로 다시는 이전의 거처로 돌아가지 못했어.








레골라스는 한숨을 쉬었어. 무거운 한 쪽 발목은 영 적응이 되질 않아. 어디 그 뿐인가, 혼자서 이렇게 큰 침실에 있는 것도 그래. 아무도 없는 방에 있으려니 답답했어. 어차피 말을 하지 못하니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려면 필담을 나눠야 하지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 이렇게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절그럭대는 긴 사슬을 이리저리 끌면서 창가로 가서 쭈그리고 앉았어. 차라리 전처럼 정신없이 허드렛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게 더 나아.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울적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잖아.


발목에 감겨있는 족쇄에 시선이 닿았어. 길게도 연결된 사슬의 끝은 방 가운데에 있는 기둥에 연결되어 있어. 멍하니 사슬을 따라가던 눈은 곧 급하게 깜박댔어. 뺨과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어. 기둥에 간신히 기대서 생각하기도 민망한 소릴 냈던 게 바로 어제였거든. 그런 건 침대에서만 하면 안 되나. 어차피 자기도 물고 빨고 하기에는 침대가 더 편할 텐데. 스란두일을 떠올렸던 레골라스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 다시 창밖을 내다봤어.


레골라스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보다는 안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자책감과 우울함에서 벗어나진 못했어. 스란두일과 밤을 보낸 다음 날부터 자신은 여기서 나가지 못했어. 스란두일은 힛싸 때 안겨올 땐 언제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날을 세우고 경계하는 레골라스를 보면서 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노예가 건방지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어. 그저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다 막아버렸지. 레골이가 하루종일 홀로 있다가 보는 사람이라곤 끼니 때마다 식사를 챙겨주러 들어오는 시종과 스란두일뿐이었어. 그나마 시종도 스란두일 지시 때문에 말도 걸어오지 못했어. 시간이 지나면서 레골라스는 스란두일에게 날을 세우는 것조차 체념했어. 조금씩 스란두일을 기다리게 됐지. 대화를 하고 무어라도 접촉할 사람이 스란두일밖에 없었으니까. 말을 못하니까 스란두일의 손을 끌어다가 그 위에 글씨를 쓰면서 이야기를 했어. 종이랑 펜을 주면 되는데 스란두일은 그것보다 손 위에 움직이는 레골라스의 손가락을 더 좋아해서 주지 않았어. 글 쓴다고 살짝 고개 숙인 모습도 좋고. 레골라스가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자신에게만 의지하기를 원했던 스란두일은 자신의 계략이 맞아떨어지자 아주 기분이 좋았어.



오후에도 스란두일은 종종 침실에 들러서 레골라스를 끌어안고 쉬다가 다시 나가기도 했어. 레골이 살내음이랑 페로몬 내음을 스란두일은 정말 좋아했어. 얘는 왜 이런 것까지 중독성 있고 그런담. 킁카킁카 하면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전하 변태 같지만 변태 아님. 스란두일은 자신이 레골이에게 푹 빠진 걸 부인하지 않았어. 천천히 마음을 얻는 수고쯤은 즐겁게 여기기까지 했지.







시간이 지나 레골라스가 자신이 오는 걸 반기기 시작하고 손글씨로 대화하는 것에도 아주 익숙하게 됐을 때 스란두일은 레골라스의 발목에 걸려있던 족쇄를 풀어주었어. 대신에 아주 가는 발찌를 채워줬지. 침실 말고도 서서히 다른 곳도 갈 수 있게 해줬어. 책도 읽게 해주고 정원 같은 곳도 데려갔어. 스란두일과 꼭 동반해야 갈 수 있었지만 레골라스는 무척 좋아했어. 레골라스를 돌볼 겸 감시 겸 시동도 하나 붙여주고, 레골이는 이제 스란두일에게 완전히 적응했어. 스란두일이 자신이 살던 나라와 가족을 모두 잃게 한 장본인임을 절대로 잊을 순 없기에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전처럼 아주 끔찍하지만은 않았어. 스란두일을 보기 전에는 스란두일이 아주 무섭고 냉정하기만 할 사람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었는데 전혀 달랐지. 그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자신에게 자괴감도 느꼈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 레골이. 늘어지니까 zipzip




세상만사가 스란두일 뜻대로 잘 풀리기만 할 리가 없죠. 둘 사이에 간질간질한 기류가 오고갈 쯤에 사건이 하나 터져야 옳다. 스란두일이 어느 날인가 오후에 방에 갔는데 레골이가 없는 거야. 스란두일이 쓰는 곳만 해도 넓으니까 어디로 갔나 이리저리 찾는데 없어. 처음엔 당황했다가 정말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서서히 분노에 차는 스란즌하. 레골이 담당 시동을 찾으니까 시동도 레골이 찾는 중이었던지 스란두일 보자마자 새파랗게 질리는 거야. 큰일 난 거지. 스란두일의 특별대우를 받고 있어도 레골인 여전히 노예야. 노예가 없어졌다? 그럼 그건 답이 하나야. 도망간 거지. 당장 찾아오라고 스란두일은 펄펄 뛰고 피가 거꾸로 솟고 눈에서 불을 뿜고 여하간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기세야. 궁 전체에 비상이 걸렸지. 경비병 다 풀어서 궁 내부는 물론 밖도 수색하기 시작했어.



한 참 뒤에 한 경비병과 함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레골이가 나타났어. 스란두일은 안도하면서도 너무 화가 나서 그대로 레골이 뺨을 갈겼어. 손이 큰 탓에 얼굴 반을 그대로 얻어맞았지. 분이 안 풀려서 스란은 얼마나 예뻐해줬는데 도망을 가냐고, 이따위로 뒤통수를 치냐면서 길길이 날뛰다가 레골이 그대로 끌고 방으로 들어갔어. 뒤에 남은 시종들과 병사들은 오늘 초상치르겠다 싶어서 끌려들어가는 레골이 불쌍하게 바라봤어. 레골이 돌보던 시동은 말할 것도 없고.


레골라스는 이러다 죽겠다 싶었어. 오늘만큼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어. 아무리 손끝으로 말을 하려 해도 지금은 그럴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어. 도망간 거 아니라고 아무리 속으로 비명을 질러도 닿지 않아. 방문이 닫히자마자 죽일 듯이 알파향을 내뿜던 스란두일은 한마디도 없이 레골이 옷부터 쥐어뜯었어.


꽝꽝 부딪혀 올 때마다 뼈가 다 울렸어. 그때서야 레골인 스란두일이 그동안 얼마나 배려하면서 자길 안았는지 알았지. 알파 페로몬이 칼끝처럼 거세서 숨이 다 아파. 채 젖지도 못한 채 억지로 스란두일을 받아들인 안이 고통스러운 건 말 할 것도 없고. 어마어마한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날뛰는 스란두일의 어깨를 붙잡았는데 역효과가 났어. 스란두일이 레골이가 자기를 거부한다고 여긴 거야. 정말로 도망갈 생각이었냐고, 그렇게 하게 내가 내버려 둘 것 같으냐고 미친 듯이 화를 냈어. 이번엔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발에 다 족쇄 채워놓을 거라고, 아니, 아예 발도 다 못쓰게 잘라버릴 거라고 소릴 질렀지. 줄줄 눈물이 새어나오던 눈가를 닦으면서 레골이는 스란두일의 가슴 위로 손을 가져갔어. 끅끅 울면서 글씨를 썼어. 도망친 거 아니라고, 그저 정원에 갔었는데 정원의 철창문이 닫혀서 되돌아오지 못했다고, 그러다 경비병에게 발견돼서 온 거라고 엉엉 울었어. 나간다 한들 자신은 돌아갈 곳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왜 도망가겠냐고, 당신이 다 없애서 갈 곳도 하나 없는데, 거기까지 쓰는 순간 레골이는 펑펑 울기 시작했어. 아프고 서럽고 억울하고.



그때서야 스란두일은 자기가 성급했다 싶었어. 레골이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서럽게 우는 레골이 보니까 설혹 도망가려다 거짓말 하는 거라고 해도 믿어줘야 할 거 같은 거야. 우느라 새빨갛게 어그러진 얼굴은 얻어맞아서 한쪽이 퉁퉁 부어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아깝고 그러는 거야. 스란두일은 저도 모르게 레골이 붙들고 달래주고 있음.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병주고 약주고 잘 하시는 전하...!



울다가 지쳐서 잠든 레골이 두고 스란은 자초지종을 알아보겠지. 근데 레골이 말이 맞는 거야. 도망치려고 궁 밖으로 나가려면 정원이 있는 남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나가야 돼. 정원 가봤자 거긴 막다른 성벽밖에 없어. 정원에 겹겹이 있는 문은 안에선 열리는데 밖에선 열쇠로 따로 열고 들어와야 돼. 레골이는 그동안 정원에 갈 땐 스란두일과 같이 가서 문이 그런 구조로 되어있는 것까진 몰랐었어. 혼자 정원에 갔다가 문이 안 열려서 다른 곳으로라도 들어오려고 헤매느라 시간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난리가 난 거지. 레골라스가 나갈 때 스란두일 방 밖에 바로 서 있던 경비병도 교대 시간이라 잠깐 자리를 비우느라 레골이가 나갔는지 모른 거지. 시동도 자릴 비운 새였고. 레골이야 잠깐 나갔다 금방 올 거니까 따로 알리지 않고 나간 건데 일이 터진 거지. 별것도 아닌 걸 일로 키운 건 스란두일이지만.



레골이 담당 시동은 계속 초조하게 기다렸어.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발 동동 구르면서 계속 기다리고 기다렸어. 다음날 늦은 아침이 되어서도 별다른 지시도 없고, 침실 안으로 식사 담당 시녀들만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걸 본 시동은 부리나케 시녀들에게 가서 물어봤어. 레골라스님 살아는 계시냐고. 웬걸, 시녀들은 스란두일님이 레골라스 무릎에 앉혀두고 직접 스프 먹여주는 거 보고 왔다고 자기들이 더 흥분해서 입을 놀렸지. 벙찐 시동은 아....역시 레골라스님에게 뭔가 있구나...그렇구나..혼자 납득해야 했어.




뭐, 레골이가 아무리 스란두일이 주는 대로 스프 받아먹었다곤 해도 마음이 다 풀린 건 아님. 풀리고 그런 걸 떠나서 스란두일 보기만 해도 무서운 거야. 어떡하겠어, 스란두일 보면 머리로는 아니어도 몸이 벌벌 떨리기부터 하는 걸. 간신히 좀 가까워졌던 사이는 원점으로 돌아갔어. 그래서 스란두일은 완벽한 닦개(...)로 거듭나기로 결심했어. 레골이가 좋아하는 것만 해주려고 노력하고 무서워하는 게 가라앉고 마음 열릴 때까지 품 안에만 두고 잦죽도 셍수도 안 먹고 꾹꾹꾹 참았어. 레골이랑 손으로 이야기만 하면서 둥기둥기, 부둥부둥만 열심히 했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레골이도 차츰 웃는 날이 생겨났어. 레골이가 웃기라도 하면 스란두일은 당연히 심쿵쿵쿵하고 그러다가 분위기도 묘해지기도 하고 조금씩 두사람 사이도 나아졌어. 스란두일은 레골이가 더 크게 웃는 걸 보고 싶었어. 레골이 웃는 거 선샤인 하자나. 자주자주 보고 싶자나.


추운 날씨가 더 추워지니까 스란두일 침실에도 두툼한 모피가 여기저기 깔렸어. 스란두일이 사냥으로 잡아온 것도 있고. 근데 레골이가 모피 근처에 잘 안 가는 거야. 스란두일은 레골이 따뜻하게 지내라고 목도리며 망토도 다 모피로 준비했는데 레골이가 그걸 못 견뎌 하는 거지. 간지럼 심하게 타서. 맨 살갗에 닿으면 잠시도 못 견디고 꺄르르 넘어가는 거야. 이거다...! 스란두일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어.


스란두일이 레골이랑 다시 잦죽 고소하게 나눠먹고 셍수 벌컥벌컥 들이키게 된 계기는 모피로 만든 털뭉치였어. 분위기 좋게 품에 안고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스란두일이 미리 준비해둔 털뭉치 갖고 간질이면서 장난치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옷 안으로 들어가고...레골인 그걸로 스란두일이 밤새 내내 자기 괴롭힐 줄은 꿈에도 몰랐음. 모피플(...)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차츰 커퀴 오브 커퀴로 거듭났지.





보고 싶은 거 나왔으니까 이제 마무리 해야지 헤헤. 스란두일이 레골라스에게 푹 빠진 건 이제 황실의 누구나 다 알아. 신하들도 오로페르도 스란두일이 황태자비만 제대로 맞이하기만 한다면 레골라스는 첩? 개념으로 두면 되니까 그렇게 신경을 안 썼어. 아니 근데 스란두일이 혼인 생각을 하질 않는 거야. 하도 레골이만 싸고 도니까 그때서야 위기감을 느낀 신하들이 저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혼인하라고, 왜 그깟 노예 하나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냐고 언성을 높였지. 그러자 스란두일은 노예제 자체를 폐지해버렸음. 노예의 ㄴ자도 못 꺼내게. 그리고 레골이를 일단 비로 품계를 올려버렸어. 혼인 얘기 나와도 레골이 아니면 안 한다고 개무시함. 오로페르 말도 마이웨이 하는데 신하들 말 듣겠어? 신하들은 스란두일이 레골이 때문에 정사를 소홀히 한다거나 그런 거라도 있으면 꼬투리 잡으려고 벼르는데 스란두일에게 그딴 일은 내 사전에 없ㅋ 엉ㅋ


그렇다고 신하들이 얌전히 아이고 그러세요 받아들이진 않지. 복속국의 왕실도 아니고 귀족이었던데다가 노예출신의 비가 말이 되냐고 들고 일어났지. 그래서 스란두일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가문에다가 레골이를 양자로 입적시켜버림. 자기가 뒷배 잘 봐준다고, 제일 큰 가문 견제하는 거 도와준다고 구실 붙여가면서 꼬셨지. 신하들이 이제 신분 쪽으로 건들긴 어려워지니까 레골이가 남성 오메가란 걸 공격함. 임신 가능하면 뭐해, 남성오메가는 유산율이 높아서 황손을 남기기 어렵다고 난리침. 틀린 말은 아님. 그런데 그해 말부터 로만, 조, 윗, 로이, 마이클, 네드까지 스란두일 존똑인 아들 여섯이 줄줄이 태어나는 거야.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합하면 일곱. 막내는 레골이 닮은 윌이라고 하자. 그쯤 되니 신하들은 해탈함. 뭐라고 해도 들어 먹히는 게 있어야지.



 

이제 방해하는 것도 거칠 것도 없음. 이야 신난다. 그래서 스란레골네는 꽁냥꽁냥 알콩달콩 자식 일곱이랑 오순도순 재미지게 잘 살았다고 한다. 끗!!















급마무리 뎨둉!!스란레골비 라이즈ㅠ !!


2014.11.25 15:15
ㅇㅇ
모바일
아 문체 내스따일이당
[Code: 53d2]
2014.12.12 13:50
ㅇㅇ
모바일
슨새임 존잼 ㅜㅜㅜ 스크ㅗㄹ내려가는게싫어요 ㅠㅠㅠ 보고 또 볼래 ㅠㅠ
[Code: 1294]
2015.11.30 23:20
ㅇㅇ
모바일
스런레골 라이즈ㅠㅠㅠㅠ
[Code: 76cf]
2019.05.01 00:00
ㅇㅇ
모바일
아 존잼 ㅠㅠㅠ 둘이행복해라
[Code: fc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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