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가 산신의 반려가 되기 직전의 이야기임.
산신덕화에게 낙인 찍힌 이후로 조위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는데 그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떠나가는 거였어. 도끼를 무사히 돌려받고 난 후부터 사람들이 이상하게 저와 만나려 하질 않는 거야. 미안 오늘 고뿔에 걸려서, 에구머니나 미안하구나 옆집 순이가 애기를 낳았다지 뭐니, 오늘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니? 등등 갖가지 이유로 조위와의 만남을 피했어.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이쯤되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바보라도 의심하게 될 거야. 그때 만났던 산신이 무슨 짓을 했구나, 하고. 조위는 난생 처음으로 화가 끓어올랐어. 동네 똥개가 제 옷을 물어뜯어도 화 한 번 내지 않았던 그가 처음으로 화를 냈지.
조위는 유일하게 그를 피하지 않는 친우에게 찾아가 울분을 쏟았어. 너 말고 아무도 날 안 만나줘! 심지어 나 좋다고 따라다녔던 꽃순이도! 이게 말이 돼? 조위의 얼굴이 시뻘개지자 친우는 찬물을 떠다주며 나지막하게 말했어. 미친놈이 제대로 찍었네, 아주. 조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성치야?
- 있어, 그런 거.
- 뭔데! 나도 말해줘! 너 뭐 아는 거 있어?
- ......아니야. 없어.
누가 봐도 수상한 성치의 태도에 조위가 끈질기게 되물었지만 성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그저 다시 그 산에 가보라고 할 뿐이었지. 조위가 산을 다시 찾게 된 이유는 그거였어. 성치가 찾아가보라고 해서.
-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조위가 자기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질렀어. 어쩐지 너만 내 옆에 남았다 했더니, 주성치 너도 이 산신이랑 한 패였어?! 요즘들어 화가 늘어난 조위를 보며 성치가 혀를 쯧 하고 찼어.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덕화가 어깨를 으쓱하며 저를 쳐다봤지. 조위의 옆에 앉아 자길 내려다보는 덕화의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어.
- 아가, 그만 진정하고 앉지 그러냐.
-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다 한통속이었던 거잖아요! 이 사기꾼들!
- 솔직히 나는 아니야. 나는 정말 몰랐어. 설마하니 진짜 널 반려로 삼을 줄은,
- 범아, 내가 이미 한 번 말하지 않았느냐? 네 새 주인에게 말을 높이라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경고의 메시지가 들어있었어. 성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느새 삐져나온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어. 원래 성치는 덕화의 옆을 지키는 호랑이였어. 천 년이 훨씬 넘게 그 옆을 지키다 문득 인간의 삶이 궁금해져서 변신하고 그들사이에 끼어든 거였지. 그래서 덕화가 조위에게 건 주술이 성치에겐 통하지 않았던 거였고
- 호랑이라니, 호랑이라니! 그게 말이나 돼! 어쨌든 날 속인 거잖아!
- 하하, 화가 아주 잔뜩 났구나.
- 웃지 마세요 저 지금 기분 몹시 안 좋거든요 이 산신놈아!
히익-!
조위의 막말에 주변에 있던 동물들이 화들짝 놀라 눈을 가렸어. 덕화의 평소 성격이었다면 불같이 화를 내고도 남았을 거였지. 그런데 어째 소리지르는 건 인간 하나뿐이야. 산신은 웃는 소리밖에 안 내. 우와, 산신님이 정말로 사랑에 빠지셨나보다. 조위의 발치에 있던 토끼는 금방 기분이 좋아져 그들 주변을 뛰어다녔고, 저멀리 머리를 숨기고 있던 사슴은 조위에게로 달려와 머리를 부볐어. 새 주인님 좋아! 새 주인님은 따뜻해!
- 이거 봐라. 이 수많은 아이들이 너를 환영하고 있잖니. 그런데도 그렇게 화만 낼테냐.
조위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어. 아무 죄없는 동물들에게 화풀이를 할 순 없었지. 결국 제일 만만한 건 성치였어.
- 니가 다시 산으로 가라고만 안 했어도!!
- 꼬리는 건드리지마!! 악! 하지말라고 했다!
- 하핫, 아주 어린애들 싸움이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덕화가 성치에게 달려드는 조위를 안아들고 시선을 마주했어. 너무 심하게 움직이진 말아라. 네 안의 그 아이도 위험할 수 있어. 그 말에 조위가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어. 우리 어제 딱 한 번 잤잖아요! 성치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어.
- 넌 산신을 뭘로 보는 것이냐.
- 말도 안 돼! 이, 이, 나쁜 놈!! 사기꾼!! 변태 자식!!
- 그래, 그래. 이만 들어가서 누워있자. 내가 널 위해 보금자리도 새로 만들었다. 마음에 들게야.
마음에 안 들어! 싫어!
멀어지는 조위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치가 호랑이의 모습으로 변했어. 새 주인님이 아주 까탈스럽네.
유덕화양조위 덕화조위 화양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