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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7 22:18
전주인에 대한 링의 마지막 파워오브 정으로ㅋㅋ 잉리 사후로 회귀한 웬우가 보고싶다
뒤로 갈수록 오메가버스/샹치웬우 메인으로 은은 웬우텀이 될 거 같음
1 https://hygall.com/413459886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샤링은, 샹치의 손을 잡은 웬우가 식탁 근처에 나타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꽤 놀란 눈치였다. "샤링." 딸의 이름을 짧게 부른 웬우가 자리에 앉았다. 주방에서 국을 뜨던 여자가 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가끔 들러 집안일을 보아주던 가정부였다. 잉리의 장례에 참석해 조용히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 오십줄에 들어선 여자는, 물기 고인 눈으로 잠시 웬우를 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상을 차려주었다.
그들은 정적 속에서 식사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음식을 씹어 넘기며, 웬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몇 가지 거대한 문제들을 짚어보았다. 하나, 잉리의 복수. 그것은 그가 시간을 수천 번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코 경시하지 않을 문제였다. 그들은 수천 번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생에서는 잉리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전처럼 시간과 인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복수를 위해 텐 링즈를 다시 소집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미 원수들의 이름과 소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둘, 아이들의 양육. 이것은 조금 더 복잡한 문제였다. 웬우는 문득 길을 잃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충분한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선명히 깨달았다.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으나 직면하지는 못했던 사실이었다. 샹치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마자 웬우가 얼마나 아버지로서 실패했는지, 그가 어머니 없이 남겨진 자녀들보다 복수와 텐 링즈에 얼마나 심취해 있었는지를 비난했다. 웬우는 입 안의 밥이 모래처럼 깔깔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버지. 아마도 그들은, 잉리와 함께하던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한 모양이었다. 처음 말을 배우는 원숭이처럼 잉리의 따뜻함을 따라하던, 그 옛 시절의 자신을. 웬우는 짙게 피어오르는 상념을 내리누르며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잉리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훌륭히 키웠을 텐데. 잉리가 나 대신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없이 홀로 남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잉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기를 바랐었지? 미간을 좁힌 채, 웬우는 아내의 말과 표정을 떠올리려 애썼다.
난 우리 아이들이 강하고 상냥한 사람이 되기를 원해.
다른 사람들을 지키고, 또 지킴받을 용기를 가진.
하지만 무엇보다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이들을 재운 다음, 잉리는 웬우와 함께 침대에 누워 종종 그렇게 속삭였다. 웬우는 그때마다, 잉리가 하는 말은 모두 옳고 좋게만 들린다고 생각하며 그러자고 응수했다. 강하고 상냥하면서도, 용감하고 행복한 사람. 웬우는 어쩐지 침통해졌다. 당시의 그가 선선히 잉리에게 동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잉리가 함께했던 덕이었다. 네 가지 특성 중, 그가 가장 명확히 가르칠 줄 아는 것은 강함뿐이었다.
"아빠."
작은 부름이 들렸다. 퍼뜩 상념에서 빠져나와, 웬우는 샤링을 향했다. 긴 머리칼이 오빠보다 조금 더 심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잉리와 닮은 눈동자를 보자마자 가슴이 조여들었다. 하지만 이 모습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샤링은 언젠가처럼 터널을 통해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날 터였다. 아이들이 결국엔 자신을 이해하게 되리란 말로 스스로를 속이려 했지만, 한 번 생의 끝을 보고 온 남자는 이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샹치가 도망치고 샤링이 떠난 날, 이 가족은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저...오늘 안방에서 자도 돼요?"
샤링이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물었다. 웬우가 눈을 깜박였다. 샤링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샤링이 입술을 깨물고는 더 작게 말했다. "엄마 냄새 맡고 싶어요." 잘못을 고백하는 듯한 말에, 웬우는 살짝 눈썹을 들었다. 예전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 말이었다. 당시의 웬우는 아이들과 대화랄 것을 하지 못했다. 그가 타는 분노에 사로잡혀 텐 링즈를 소환하는 동안, 아이들은 겁먹은 병풍처럼 그의 곁이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래라."
웬우가 짧게 건넸다. 어차피 자신은 오늘 그 방에서 잠들지 않을 터였다. 고개를 끄덕인 샤링이 물었다. 여전히 작았지만, 방금 전보다는 한결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도 거기서 주무실 거예요?"
"아니. 난...다녀올 곳이 있어."
웬우가 신중하게 말했다. 남매의 얼굴로 순식간에 긴장의 빛이 흘렀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샹치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 가시는데요?"
네 엄마를 해친 사람들을 모두 죽여 효시와 비슷한 형에 처하러. 웬우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복수에 당장 적극적으로 동참시킬 것이 아니라면, 굳이 생생한 그림을 그려줄 필요는 없었다(살인자가 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들에게, 다시 칼을 쥐여 보낼 마음도 들지 않았다). 대신 웬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느리게 말했다. 조용한 목소리였으나 그 내용까지 조용하지는 않았다.
"필요한 일을 하러. 엄마를 해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마치지 않으면, 그들이 다시 우리 가족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의 얼굴로 두 배쯤 강한 긴장이 흘렀다. 그들은 분명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웬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신이 부재한 사이 다시 적들이 쳐들어올 일을 걱정하는지도 몰랐다. "여길 잠시 지켜줄 사람을 부를 거야. 강한 사람이니, 염려 마라." 웬우가 건넸다. 텐 링즈를 두고 떠났을 때, 한사코 자신의 주변을 맴돌겠다며 따라온 자가 근처에 살고 있었다. 샹치와 샤링은 어쩐지 떨떠름한 눈으로 서로를 보았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웬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이들을 잠시 멈춰 두었다. 의아한 시선 두 쌍을 한 몸에 받으며, 그는 잠시 안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잉리의 손때가 탄 나무 빗이 보였다. 빗을 쥔 손아귀로 힘이 들어갔다. 아내의 흔적을 여러 번 마주한다 하여 덜 아파지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조금 둥글고 둔해질 뿐이었다. 웬우는 선 자리에서 가만히 심호흡을 하고는, 빗을 쥔 채 식탁 곁으로 돌아갔다.
두 아이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빗을 보고 퍽 놀란 모양이었다. 잉리가 죽기 전까지는, 평소에도 가끔씩 내가 빗어 주었는데. 웬우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한 손으로 샤링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차분히 건네자, 샤링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웬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하다가-고갯짓도 어쨌든 움직임이었다-이내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프면 얘기해라." 웬우가 낮게 말했다. 아무리 힘조절을 하더라도, 어린아이의 두피에는 자신의 빗질이 영 억세게 느껴질 수 있었다.
엉망이었던 긴 머리칼이 정돈되어 가는 사이, 샹치는 곁에 앉아 빤한 눈으로 동생과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샤링은 웬우의 말대로 몸을 꼿꼿이 편 채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게 훌쩍이기 시작했다. 웬우의 빗질이 잠시 멈추었다. 너무 아프게 했나? 그러나 샤링은 코 먹은 소리로 얼른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웬우는 잠자코 딸의 머리를 마저 빗었다. 어쩌면 샤링은 엄마의 빗을 보고 잉리가 생각난 것인지도 몰랐다.
샤링의 머리칼을 빗어주고 엉망이 된 얼굴까지 묵묵히 닦아준 다음, 웬우는 샹치의 뒤로 다가갔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는 아버지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아무래도 샤링보다는 짧은 머리였기에, 엉킨 머리를 푸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뒷머리 한 부분이 심하게 엉켜 힘을 주었는데, 꽤 아팠을 것이 분명함에도 샹치는 움찔했을 뿐 피하지 않았다. 웬우는 빗질을 마친 다음, 손가락으로 가볍게 아들의 머리를 빗어 모양을 잡아주었다.
"씻고 쉬도록 해라. 밤에 가면을 쓴 낯선 사람이 오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는 아군이다."
웬우가 나직하게 건넸다. 샹치와 샤링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웬우는 일하러 왔던 가정부를 통해 편지를 전달했다. 위급 상황을 알림과 동시에 도움을 요구하는 메시지였다.
편지의 수신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웬우는 상자 속의 링을 꺼내 집 근방의 나무를 두들겨패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미끄러지듯이 달려 웬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수 년 만의 조우임에도, 그는 예전과 다름없는 태도로 웬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이들을 지켜. 나는 다녀올 곳이 있으니."
웬우가 그를 힐끗 보며 건넸다. 가면의 남자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더 부르지 않으십니까?"
"나는 텐 링즈가 아니라, 너를 소환한 것이다. 아이들을 지켜."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하면, 가면 좀 벗어."
"그...알겠습니다."
그가 주저하다 말했다. 웬우는 고개를 끄덕하고는, 발 빠른 복수를 시작하기 위해 집의 대문을 향했다.
그의 발길을 잠시 멈춘 것은, 다름아닌 아이들의 말소리였다. 안방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링으로 인해 오감이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꽤 또렷하게 들렸다. 샤링이 샹치를 다그치듯이 말하고 있었다.
"아빠한테 가지 말라고 하자. 응? 아직 안 갔잖아, 응?"
"샤링...아빠가 결정한 일이잖아. 그럴 순 없어."
"그러다 아빠도 없어지면 어떡해?"
샤링이 악을 쓰듯 속삭였다. 이상한 조합이었으나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웬우가 놀란 눈으로 창을 바라보았다. 샹치가 불편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불확실한 투로 말했다.
"아빠는...아빠한텐 링이 있잖아. 링을 가진 아빠는 굉장히 세다고 했어.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어떻게 알아? 아빠가 링 쓰는 거 본 적도 없으면서."
"그만해, 샤링."
"오빠는, 오빠는 안 무서워? 아빠도 엄마처럼-."
"그만해!"
샹치의 언성이 잠깐 높아졌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끝에, 샤링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웬우는 그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링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아련한 두통과 안통이 느껴졌다. "샤링, 샤링...미안해. 울지 마." 샹치가 쩔쩔매고 있었다. 다시금 한숨을 토하며, 웬우는 눈을 뜨고 발을 옮겼다. 바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귓가에 울리는 소리들을 쉬이 뒤로 하기가 어려웠다.
안방 문간에 우뚝 서자, 아이들이 울음과 말을 동시에 멈추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샤링은 침대에 웅크려 있었고, 샹치는 머리맡의 의자에서 동생을 달래던 참이었다. 웬우는 양팔에 푸른 빛을 휘감은 자신이 과연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다가, 이내 가볍게 손짓했다.
"샹치, 샤링. 잠깐 밖으로 나와라."
뒤로 갈수록 오메가버스/샹치웬우 메인으로 은은 웬우텀이 될 거 같음
1 https://hygall.com/413459886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샤링은, 샹치의 손을 잡은 웬우가 식탁 근처에 나타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꽤 놀란 눈치였다. "샤링." 딸의 이름을 짧게 부른 웬우가 자리에 앉았다. 주방에서 국을 뜨던 여자가 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가끔 들러 집안일을 보아주던 가정부였다. 잉리의 장례에 참석해 조용히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 오십줄에 들어선 여자는, 물기 고인 눈으로 잠시 웬우를 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상을 차려주었다.
그들은 정적 속에서 식사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음식을 씹어 넘기며, 웬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몇 가지 거대한 문제들을 짚어보았다. 하나, 잉리의 복수. 그것은 그가 시간을 수천 번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코 경시하지 않을 문제였다. 그들은 수천 번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생에서는 잉리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전처럼 시간과 인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복수를 위해 텐 링즈를 다시 소집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미 원수들의 이름과 소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둘, 아이들의 양육. 이것은 조금 더 복잡한 문제였다. 웬우는 문득 길을 잃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충분한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선명히 깨달았다.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으나 직면하지는 못했던 사실이었다. 샹치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마자 웬우가 얼마나 아버지로서 실패했는지, 그가 어머니 없이 남겨진 자녀들보다 복수와 텐 링즈에 얼마나 심취해 있었는지를 비난했다. 웬우는 입 안의 밥이 모래처럼 깔깔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버지. 아마도 그들은, 잉리와 함께하던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한 모양이었다. 처음 말을 배우는 원숭이처럼 잉리의 따뜻함을 따라하던, 그 옛 시절의 자신을. 웬우는 짙게 피어오르는 상념을 내리누르며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잉리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훌륭히 키웠을 텐데. 잉리가 나 대신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없이 홀로 남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잉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기를 바랐었지? 미간을 좁힌 채, 웬우는 아내의 말과 표정을 떠올리려 애썼다.
난 우리 아이들이 강하고 상냥한 사람이 되기를 원해.
다른 사람들을 지키고, 또 지킴받을 용기를 가진.
하지만 무엇보다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이들을 재운 다음, 잉리는 웬우와 함께 침대에 누워 종종 그렇게 속삭였다. 웬우는 그때마다, 잉리가 하는 말은 모두 옳고 좋게만 들린다고 생각하며 그러자고 응수했다. 강하고 상냥하면서도, 용감하고 행복한 사람. 웬우는 어쩐지 침통해졌다. 당시의 그가 선선히 잉리에게 동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잉리가 함께했던 덕이었다. 네 가지 특성 중, 그가 가장 명확히 가르칠 줄 아는 것은 강함뿐이었다.
"아빠."
작은 부름이 들렸다. 퍼뜩 상념에서 빠져나와, 웬우는 샤링을 향했다. 긴 머리칼이 오빠보다 조금 더 심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잉리와 닮은 눈동자를 보자마자 가슴이 조여들었다. 하지만 이 모습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샤링은 언젠가처럼 터널을 통해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날 터였다. 아이들이 결국엔 자신을 이해하게 되리란 말로 스스로를 속이려 했지만, 한 번 생의 끝을 보고 온 남자는 이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샹치가 도망치고 샤링이 떠난 날, 이 가족은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저...오늘 안방에서 자도 돼요?"
샤링이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물었다. 웬우가 눈을 깜박였다. 샤링이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샤링이 입술을 깨물고는 더 작게 말했다. "엄마 냄새 맡고 싶어요." 잘못을 고백하는 듯한 말에, 웬우는 살짝 눈썹을 들었다. 예전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 말이었다. 당시의 웬우는 아이들과 대화랄 것을 하지 못했다. 그가 타는 분노에 사로잡혀 텐 링즈를 소환하는 동안, 아이들은 겁먹은 병풍처럼 그의 곁이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래라."
웬우가 짧게 건넸다. 어차피 자신은 오늘 그 방에서 잠들지 않을 터였다. 고개를 끄덕인 샤링이 물었다. 여전히 작았지만, 방금 전보다는 한결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도 거기서 주무실 거예요?"
"아니. 난...다녀올 곳이 있어."
웬우가 신중하게 말했다. 남매의 얼굴로 순식간에 긴장의 빛이 흘렀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샹치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 가시는데요?"
네 엄마를 해친 사람들을 모두 죽여 효시와 비슷한 형에 처하러. 웬우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복수에 당장 적극적으로 동참시킬 것이 아니라면, 굳이 생생한 그림을 그려줄 필요는 없었다(살인자가 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들에게, 다시 칼을 쥐여 보낼 마음도 들지 않았다). 대신 웬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느리게 말했다. 조용한 목소리였으나 그 내용까지 조용하지는 않았다.
"필요한 일을 하러. 엄마를 해친 사람들과 이야기를 마치지 않으면, 그들이 다시 우리 가족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의 얼굴로 두 배쯤 강한 긴장이 흘렀다. 그들은 분명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웬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신이 부재한 사이 다시 적들이 쳐들어올 일을 걱정하는지도 몰랐다. "여길 잠시 지켜줄 사람을 부를 거야. 강한 사람이니, 염려 마라." 웬우가 건넸다. 텐 링즈를 두고 떠났을 때, 한사코 자신의 주변을 맴돌겠다며 따라온 자가 근처에 살고 있었다. 샹치와 샤링은 어쩐지 떨떠름한 눈으로 서로를 보았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웬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이들을 잠시 멈춰 두었다. 의아한 시선 두 쌍을 한 몸에 받으며, 그는 잠시 안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잉리의 손때가 탄 나무 빗이 보였다. 빗을 쥔 손아귀로 힘이 들어갔다. 아내의 흔적을 여러 번 마주한다 하여 덜 아파지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조금 둥글고 둔해질 뿐이었다. 웬우는 선 자리에서 가만히 심호흡을 하고는, 빗을 쥔 채 식탁 곁으로 돌아갔다.
두 아이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빗을 보고 퍽 놀란 모양이었다. 잉리가 죽기 전까지는, 평소에도 가끔씩 내가 빗어 주었는데. 웬우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한 손으로 샤링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차분히 건네자, 샤링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웬우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하다가-고갯짓도 어쨌든 움직임이었다-이내 그 머리칼을 조심스레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프면 얘기해라." 웬우가 낮게 말했다. 아무리 힘조절을 하더라도, 어린아이의 두피에는 자신의 빗질이 영 억세게 느껴질 수 있었다.
엉망이었던 긴 머리칼이 정돈되어 가는 사이, 샹치는 곁에 앉아 빤한 눈으로 동생과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샤링은 웬우의 말대로 몸을 꼿꼿이 편 채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게 훌쩍이기 시작했다. 웬우의 빗질이 잠시 멈추었다. 너무 아프게 했나? 그러나 샤링은 코 먹은 소리로 얼른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웬우는 잠자코 딸의 머리를 마저 빗었다. 어쩌면 샤링은 엄마의 빗을 보고 잉리가 생각난 것인지도 몰랐다.
샤링의 머리칼을 빗어주고 엉망이 된 얼굴까지 묵묵히 닦아준 다음, 웬우는 샹치의 뒤로 다가갔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는 아버지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아무래도 샤링보다는 짧은 머리였기에, 엉킨 머리를 푸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뒷머리 한 부분이 심하게 엉켜 힘을 주었는데, 꽤 아팠을 것이 분명함에도 샹치는 움찔했을 뿐 피하지 않았다. 웬우는 빗질을 마친 다음, 손가락으로 가볍게 아들의 머리를 빗어 모양을 잡아주었다.
"씻고 쉬도록 해라. 밤에 가면을 쓴 낯선 사람이 오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는 아군이다."
웬우가 나직하게 건넸다. 샹치와 샤링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웬우는 일하러 왔던 가정부를 통해 편지를 전달했다. 위급 상황을 알림과 동시에 도움을 요구하는 메시지였다.
편지의 수신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웬우는 상자 속의 링을 꺼내 집 근방의 나무를 두들겨패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미끄러지듯이 달려 웬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수 년 만의 조우임에도, 그는 예전과 다름없는 태도로 웬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이들을 지켜. 나는 다녀올 곳이 있으니."
웬우가 그를 힐끗 보며 건넸다. 가면의 남자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더 부르지 않으십니까?"
"나는 텐 링즈가 아니라, 너를 소환한 것이다. 아이들을 지켜."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하면, 가면 좀 벗어."
"그...알겠습니다."
그가 주저하다 말했다. 웬우는 고개를 끄덕하고는, 발 빠른 복수를 시작하기 위해 집의 대문을 향했다.
그의 발길을 잠시 멈춘 것은, 다름아닌 아이들의 말소리였다. 안방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링으로 인해 오감이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꽤 또렷하게 들렸다. 샤링이 샹치를 다그치듯이 말하고 있었다.
"아빠한테 가지 말라고 하자. 응? 아직 안 갔잖아, 응?"
"샤링...아빠가 결정한 일이잖아. 그럴 순 없어."
"그러다 아빠도 없어지면 어떡해?"
샤링이 악을 쓰듯 속삭였다. 이상한 조합이었으나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웬우가 놀란 눈으로 창을 바라보았다. 샹치가 불편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불확실한 투로 말했다.
"아빠는...아빠한텐 링이 있잖아. 링을 가진 아빠는 굉장히 세다고 했어.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어떻게 알아? 아빠가 링 쓰는 거 본 적도 없으면서."
"그만해, 샤링."
"오빠는, 오빠는 안 무서워? 아빠도 엄마처럼-."
"그만해!"
샹치의 언성이 잠깐 높아졌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끝에, 샤링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웬우는 그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링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아련한 두통과 안통이 느껴졌다. "샤링, 샤링...미안해. 울지 마." 샹치가 쩔쩔매고 있었다. 다시금 한숨을 토하며, 웬우는 눈을 뜨고 발을 옮겼다. 바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귓가에 울리는 소리들을 쉬이 뒤로 하기가 어려웠다.
안방 문간에 우뚝 서자, 아이들이 울음과 말을 동시에 멈추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샤링은 침대에 웅크려 있었고, 샹치는 머리맡의 의자에서 동생을 달래던 참이었다. 웬우는 양팔에 푸른 빛을 휘감은 자신이 과연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다가, 이내 가볍게 손짓했다.
"샹치, 샤링. 잠깐 밖으로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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