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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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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포스 조절 못하는 애기 도와주는 서윗한 배리 (ᵕ̣̣̣̣̣̣﹏ᵕ̣̣̣̣̣̣)


15.


배리는 그다음 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에서 내려오다 한바탕 구를 뻔한 몸을 겨우 잡아 세운 뒤 외출할 준비를 했다. 브루스와 월리가 기다리고 있을 시간에 맞추려면 조금 일찍 출발해야 했다.


워치타워에 도착한 둘은 검사실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배트맨에게 붙잡혀 설교를 들었다. “돌아온 게 이틀 전이라고? 그 사실을 이제야 말하는 이유라도 있나?” 열 받은 목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문제라도 생겼으면 어떻게 하려고?”

정확히는 할이 혼자 반쯤은 듣고 반쯤은 흘리는 동안, 배리는 할의 소매를 한 손으로 잡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미 닳도록 드나든 곳임에도 눈높이가 달라지니 느낌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연락을 받고 근처에 모인 리거들도 마찬가지로 신기하게 쳐다봤다. 배리 앨런을 수년 동안 봐왔지만, 그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멀뚱히 있는 건 매우 색다른 광경이었다. 원래 구김살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도 그늘 하나 없이 웃거나 어색하게 몸을 꼬는 건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신랄함과 반짝이는 재치가 빠진, 좀 덜 날카롭고 느리고 뭉툭한 배리라고나 할까.

키스톤에서 벌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한발 늦게 도착한 월리는 할이 배리에게 생긴 일을 또 바로 얘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잠시 뚱하게 굴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돌아온 모습에 금세 잊은 듯했다.



브루스가 배리의 몸에 하나씩 센서를 부착하고 컴퓨터를 조작했다. 배리는 얌전히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과 월리가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공간을 주기 위해 나머지 인원들은 조금씩 떨어져서 서 있었다.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월리였다. 앉아있던 스피드스터의 몸 근육이 경직된 순간, 그가 빠르게 다가가 몸을 살짝 숙여 배리의 손을 잡았다. 막 일어나기 시작하던 노란 정전기가 얼마 가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스피드포스가 조금씩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배리, 괜찮아요?”

월리가 물었다. 배리의 시선이 어디 한 곳을 정착하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움직였다. 곧 고개를 저었다. 할이 가까이 걸어갔다.

“왜 그래?”

배리가 월리의 손을 마주 잡았다. “...기억이 남아있을까요?”


월리와 할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무서워?”


그 말에 배리가 끄덕거렸다. 할의 마음이 불편하게 조였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장소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기억을 잃어 잠시 달라졌을 뿐이지 그가 언제나 알고 지냈던 배리 앨런이 그대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최근의 한 달이 사라지는 건 별로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저는 할이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이도, 월리도, 다른 사람들도요. 제가 당신들하고 있었던 일을 다 잊게 될까요?”

그 말에 멀리 있던 리거들의 시선까지 모여들었다. 모두가 안쓰럽게 쳐다봤다. 더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배리를 아꼈다. 친구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변화는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정전기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맞잡은 손에서 노란 전기가 점점 크게 튀는 걸 보며 브루스가 망토를 앞으로 둘러싸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월리가 빠르게 능력을 끌어올리는 동안, 할이 두 명의 스피드스터를 보호막으로 둘러싸 주변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요란하게 튀던 소리가 가라앉았다. 월리가 손으로 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배리의 스피드포스가 원래의 속도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어요. 하루 정도면 완전히 돌아올 거에요. 스피드포스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때까지 배리의 스피드포스는 매우 약했고 그에 맞춰서 훈련했기 때문에, 원래의 몸이 가지고 있던 만큼 빠르게 강화되는 연결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생각이 많아지는 바람에 그간 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더욱 조절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배리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깃들었다. 월리의 말이 맞다면 생각을 그만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 생각만 하게 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혼돈이 뻗어 나갔다. 그의 몸이 조금씩 진동하며 사지가 잔상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월리가 배리의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배리, 주먹 한 번 쥐어 볼래요? 양쪽 다요.”

여전히 몸은 뚜렷한 형상을 그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배리는 시킨 대로 했다. 월리가 이어서 또박또박 말했다.

“그다음, 손가락을 하나씩 펴면서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려봐요. 하나씩 짧게요.”


배리가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할과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펴나갔다. 두 개, 세 개, 그리고 일곱 개가 지나갈 즈음, 서서히 몸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열 번째 손가락까지 모두 폈을 땐 정전기도, 진동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월리가 미소지었다.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에요. 스피드포스는 과학이지만, 달래는 방법은 사랑이죠.” 스피드스터다운 표현이었다.

“고마워요.” 배리가 작게 말했지만, 월리는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요. 내가 아는 모든 건 모두 당신이 가르쳐 준 거라고요.”


언젠가 그가 키드플래시였을 시절, 이와 꼭 같은 일이 있었다. 그는 그가 받았던 걸 그대로 돌려줬을 뿐이다.


뒤에서 클락과 다이애나가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보호막을 해제했다. 물러났던 브루스가 다시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


한두 시간 내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월리의 말에 따르면 이제 정말 코앞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하루 이틀은 워치타워에서 지내며 관찰하기로 했다. 검사실은 잠을 자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어서 가장 좋은 침대가 있는 의무실이 대안으로 채택되었다.


모니터링은 브루스와 월리가 돌아가며 하기로 했다. 나머지 리그 멤버 중에도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으나 ‘그렇게 낭비할 인적 자원이 있으면 너희들 도시에나 써라’는 배트맨의 말에 더는 진행되지 못했다.


“나는 원래 잘 필요가 없잖아. 내가 할 수 있는데.” 슈퍼맨이 기특하게도 자진해서 나섰다.
“네가 스피드포스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는데?”

칼같이 거절하는 말에 클락은 시무룩한 얼굴로 물러나야 했다. 상대에게 ‘그러는 너도 모르지 않느냐’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아주 잘 알고 있을 게 뻔했다. 배트맨이니까.


그들 모두 며칠씩 밤을 새우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언제 돌아올지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무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월리는 교대할 때엔 호출기를 착용한 채로 플래시의 개인실에 있기로 했다.

-

간단한 검사가 모두 끝나고 어느 정도 계획의 틀이 잡히자 우선 급한 불은 끈 셈이 되었다.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원격 모니터링 장치를 달았지만, 여전히 행동에는 제한이 있었다. 움직이기 어려운 배리를 위해서 의무실 가운데에 끌어다 놓은 큰 테이블을 둘러싸고 클락과 다이애나, 할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브루스는 말없이 벽에 설치된 화면으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감시하는 중이었고, 오늘만 인질극 범죄를 두 건이나 처리하고 온 월리는 뒤에 있는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세우며 벌써 할을 두 번째로 파산하게 만든 클락이 배리의 눈가에 어린 피곤한 기색을 눈치채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오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배리, 피곤해?”

배리가 눈을 끔뻑거렸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어른의 모습이어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클락이 가볍게 웃었다. 할이 주저 없이 판을 들어 차곡차곡 접기 시작했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어차피 파산한 마당에 게임이 다 무슨 소용인가?


“좋아, 여기까지. 이만 자자.”

다이애나가 밉지 않게 할을 흘겨보다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란 월리가 덩달아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지만 금세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제 배리가 조용히 밤을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 때였다.

-

잘 준비를 마친 배리가 침대로 올라가 자리를 잡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이 인사를 하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클락과 다이애나가 배리를 가볍게 껴안으며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 월리와 브루스는 이동할 준비를 했다. 편히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다른 모니터링 실에서 CCTV로 지켜볼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할이 다가가 배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올 테니까.”

다급한 손길이 할의 손목을 잡았다. 할이 놀란 눈으로 보자 배리의 손힘이 조금 더 강해졌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월리의 움직임이 멎었다. 나머지 사람들의 눈도 둘에게 향했다.


“...어...” 뭐지? 집에 가는 줄 알았나? 멋쩍게 변명하듯 말했다. “나도 워치타워에서 계속 있을 거야.”
“오늘은 같이 안 잘 거예요?”


뭐? 할의 얼굴이 당황해서 빨개졌다. 아이였을 땐 괜찮았지만, 지금 배리는 외관상 서른 살이었다. 집에서야 둘만 있으니까 의식할 필요가 없어도, 지금은 뒤에 다른 리그 원들이 있었다. 같은 상황인데 제삼자의 시선이 섞인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어색해질 수 있다니.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열한 살의 외형으로 말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브루스의 머릿속에 흔지 않게 물음표가 보였고, 월리는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지금도 같이 자요?”


어린 배리가 같이 잔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은 몸이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의문의 시선이 할의 등에 따갑게 날아와 꽂혔다. 그가 눈을 질끈 감는 동안, 클락은 그 말을 듣고도 저 어린 것이 얼마나 불안한지를 떠올리며 그저 울상을 지었을 뿐이다. 그 옆에서 다이애나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당황한 할이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보조 침대를 끌어왔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배리는 같은 침대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언급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할은 마음속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브루스가 이미 의심스런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악몽을 꾼다는 말도, 새벽에 깬다는 말도 분명히 했었다. 불안해하는 애를 안심시키느라 같이 자는 게 언제부터 문제였나? 친구 좋은 게 뭔데. 할이 억울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배리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는데도 같이 자는 것이 남들 보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애써 무시했다. 그림이 이상할 뿐이지, 어차피 불안정한 아이를 혼자 재운다는 선택지도 없었다.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단 말이다.


여전히 안쓰러운지 가슴에 손을 얹은 클락이 나가는 동안 다이애나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도 저만큼만 이해심이 깊으면 참 좋을 텐데. 할이 한숨을 쉬며 계속 애매한 표정으로 있는 월리에게 다가갔다.


“배리가 돌아온 뒤로 집에서 좀... 힘들어했어. 능력 조절도 어려웠고, 갑자기 커서 그런지 계속 부딪치고 다니더라고. 혼자 자게 둘 순 없잖아.” 설명하는 스스로가 바보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스피드포스를 직접 감정했던 월리는 곧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옆에 서 있는 브루스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어려웠으면 하루라도 빨리 데려오지 그랬나.”
할이 눈살을 찌푸렸다. “또 시작이네. 그 정도는 아니었어. 좀 적응하면 데려오려고 했지.”

못마땅한 배트맨이 한마디 더 하려고 했지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내가 의무실에 같이 있을 테니까 둘은 가서 쉬어.” 그가 잠을 깊게 자지 않는다는 건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부를게.”


벽에 있는 호출기를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인 월리가 벌써 눈이 가물거리는 배리를 가볍게 껴안고 인사한 뒤 사라졌다. 브루스는 말없이 서 있다가 몸을 휙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쉬라고 말은 했지만, 아마 둘 다 바로 모니터링 실로 향했을 것이다. 쉬라고 한다고 정말 쉴 인재들이었으면 이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할이 목덜미를 주무르며 보조 침대에 털썩 누웠다. 옆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맞춰 호흡하다가 눈을 감았다.


***


배리의 기억이 돌아온 건 그날 새벽 두 시쯤이었다.


할은 선잠이 들었다가 끙끙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배리가 웅크린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또 악몽인가? 최근에는 없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 순간, 배리가 눈을 질끈 감더니 몸을 흔들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할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빠르게 다가갔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주저 없이 호출 버튼을 누르고는 배리의 어깨를 잡았다.


“배리? 일어나 봐, 내 말 들려?”


배리의 몸 주변으로 낮게 자잘한 번개가 치더니 침대에 몸을 굽혀 엎드렸다. 곧바로 푸른 섬광과 함께 뛰쳐 들어온 월리가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기 위해 거리를 두고 멈췄다. 뒤이어 들어온 브루스가 기계로 다가가 수치들을 검사하는 동안, 월리는 방에 보호막을 둘러싸기 위해 물러난 할을 제치고 다가가 배리의 스피드포스를 안정시키려고 집중했다.


한동안 노란 번개가 방안을 눈부시게 밝히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몸이 약하게 진동하며 주변으로 흐르던 돌풍도 시간이 조금 흐르자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월리가 조심스럽게 배리의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배리는 뭔가 떨치려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털더니 월리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고 힘을 뺀 채 축 늘어졌다.


“...배리?” 기절한 건 아닌지 겁이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동안 깊고 거친 호흡이 이어졌다. 초조해진 월리가 막 움직이려고 했을 때, 작게 목을 울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익숙한 애칭이 들렸다.


“...안녕, 월.” 머리가 들리며 눌려있던 무게가 살짝 가벼워졌다. “여기 워치타워야? ...아, 그랬지.”

월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돌아왔네요!”


그리고 그대로 격하게 껴안았다. 배리는 순간 움찔했지만 마주 안아주었다. 할이 세웠던 구조물을 무너뜨리며 침대 가로 다가갔다.


“배리! 괜찮아?”


그제야 익숙한 목소리를 인지한 듯, 배리가 고개를 들어 할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엄청나게 지친 얼굴로 찡그리듯 웃었다. 그리고는 할의 배를 주먹으로 툭 쳤다.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뭘? 할이 속으로 되물었지만, 어쩐지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뭐라고 덧붙이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살펴보다가 물었다.


“기억이 어디까지 있어?”


그 말에 브루스와 월리가 동시에 돌아온 스피드스터를 쳐다봤다.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배리의 표정은 여전히 고통으로 물들어 있었다. 브루스의 카울 미간에 패인 주름이 깊어졌다.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는 뻣뻣한 목 근육을 풀 듯이 양옆으로 천천히 움직인 배리가 머릿속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기억은 다 있는데, 감정이 다 섞인 것 같아. 이십 년 전 하고 어제가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아닌가?” 말하다가 허공을 바라보더니 잠시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확실한 건, 오래 어딜 다녀온 기분은 아냐. 내 기억에 공백은 없어. 그냥 옛날 일을 새삼 뒤집어서 누가 눈앞에 들이민 기분? 잊었던 것들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배리가 혼란스러운 듯 조금 두서없이 말을 내뱉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브루스, 검사 결과에 문제없으면 집에 가도 될까? 머리가 너무 아픈데.”


브루스가 화면에 떠오른 수치들을 훑어보는 동안 할이 저도 모르게 한 손을 들어 배리의 뺨에 살짝 얹었다. 금방 치울 줄 알았는데, 통증이 정말 심한지 눈을 꾹 감은 배리가 할의 손에 무게를 싣고는 한동안 그대로 말없이 기대고 있었다.


“신체적인 부분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군. 월리, 네 의견도 같나?”


월리가 배리와 시선을 마주쳤다. 주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오갔는지, 둘이 잠시 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피드포스는 문제없어요. 예전이랑 같아요.”
“지금 불안정한 건 스피드포스 문제가 아니고 내 컨디션 문제야.” 배리의 말에 월리가 동의했다.

“...좋아. 문제 있으면 바로 연락하도록.” 브루스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럴게. 고마워, 브루스. 월리, 너도.”


배리가 약간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월리가 가볍게 부축했다. 팔과 다리를 몇 번 돌려보더니, 아직까지 옆에 서 있던 할의 어깨를 툭 쳤다.

“집에 가자.”


뜻밖의 말을 들은 것처럼 할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물론, 지금 할이 마땅히 갈 장소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애매하게 됐다. 배리의 집에 가끔 놀러 가거나 불의의 사고에 의해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때는 있었어도, 목적 없이 길게 체류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린 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에 있었는데, 그게 해결됐으니 이제 더 머물 구실이 사라졌다. 어쩔 줄 모르고 쭈뼛거리자 배리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뭐 해? 안 갈 거야?”


...그렇지만, 집주인이 가도 된다는데. 할이 씩 웃고는 먼저 걸어 나가는 배리의 뒤에 따라붙었다. 뭐, 그가 언제 눈치를 오래 봤었나.

-

진이 빠져 터덜터덜 걷는 배리의 보폭을 맞추며 의무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을 즈음, 할이 말을 걸었다.


“배리?”
“응?”
“보고 싶었어.”

장난기 어린 말에 핀잔을 줄 줄 알았던 배리가 가볍게 웃었다. “나도 알아. 전에도 말했잖아.” 그리곤 곧바로 후회하듯 찡그렸다. “아으, 내 머리...”


할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그가 한 달을 함께 지낸 배리는 정말 그곳에 있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것도, 다른 시간대로 간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동일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왠지 기꺼웠다.


“약이라도 사놓지 그랬어?”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은 배리에게 말했다. “어떻게 집에 약이 하나도 없냐?”


배리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 그는 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진통제든 수면제든, 특별히 제조한 게 아닌 이상에야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해열제가 한 시간이라도 들었던 건 당시 스피드포스의 연결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먹자마자 몸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화학 물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좀 참으면 괜찮을 거야.” 어차피 몸에 문제가 있어서 아픈 게 아니니까. 작게 덧붙였다. 그의 머릿속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계속 안고 갈 문제였다. 세상에는 약 따위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


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땐 아직도 깜깜한 새벽이었다. 펴질 줄 모르는 배리의 미간을 보며 할이 워치타워에서 약을 가져오는 게 좋을지 물었으나, 배리는 그저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됐어, 그냥 자면 돼.”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미심쩍은 눈으로 배리를 훑어봤지만, 곧바로 침실로 향하는 스피드스터의 몸짓은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고집은. 할이 등 뒤에 대고 쉬라는 말을 하며 재킷을 벗어 소파 등받이에 던졌다.


팔걸이 옆에 구겨져 있던 담요를 대충 펴서 몸에 덮고 누웠다. 잠을 잘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시끄러운 머리를 텅 비우려고 노력하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의아해진 할이 몸을 일으켜 어둠 속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찾았다.


침실 문가에서 배리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바라보는 그 모습이 며칠 전과 같아 기시감이 들었다. 할이 당황해서 상체를 팔꿈치로 받친 채 어정쩡하게 세웠다. 기억이 돌아온 다음에도 보게 될 광경일 줄은 몰랐는데...


“거기서 잘 거야?” 어두워서 표정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조금 부끄러워 보이는 것 같다면 착각일까? “지금 기억이 없을 때랑 감정이 섞여서 구분이 잘 안 되거든. 네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핵심을 말하지 못하고 빙빙 도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내심 허전했던 것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더 들을 필요도 없는 말에 피식 웃고는 곧바로 벌떡 일어났다.


“정말, 네가 혹시 불편하면-”
“그래, 그래, 알았어.”


코앞까지 다가간 할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횡설수설하는 배리의 몸을 말없이 잡아 돌렸다. 그리고는 등에 손을 대 침실로 밀어 넣어 버렸다. 작은 항의가 있었지만 가볍게 묵살했다.


같이 잔 지 이미 한 달이고, 최근 며칠은 어린 애도 아니었다. 이제 와 어색할 게 뭐가 있나. 전투할 때도 맨날 들쳐 매고 업고 안는 게 일상인데. 사실, 원래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딱딱하게 구는 게 맞았다. 어린 배리나 괜찮았지, 큰 배리는 평소 친근한 스킨십 정도만 스스럼없이 했을 뿐, 사적인 공간까지 선 없이 공유하지는 않았다. 어깨동무를 하거나, 껴안거나, 집에 연락 없이 들이닥칠 수는 있어도, 같은 침대까지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먼저 얘기를 꺼냈다는 건, 기억이 섞인 여파가 남아있는 게 확실했다. 할은 걱정스러웠다. 그가 우려했던 대로 지금 배리의 정서에 영향이 미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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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
그냥 자동으로 머릿속에 있는 게 써졌으면 좋겠다... 더운데 몇시간씩 컴퓨터앞에 있으니까 죽겠네

아마 다음... 아니면 다다음이 끝일듯?


할배리
2021.07.23 (00:54:05) 신고
ㅇㅇ
모바일
배리 돌아왔구나 헠헠 몸만 큰 어린 배리가 같이 안 자냐고 물을 때 할 당황하는 거 존귀ㅋㅋㅋㅋㅋㅋ 돌아온 뒤에도 같이 자는 할배리 넘 좋다 센세를 지하실로 모셔도 될까? 안 된다고 해도 모실거지만 된다고 해줬으면 좋겠어.. 센세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 영원히..
[Code: 096b]
2021.07.23 (02:22:55) 신고
ㅇㅇ
모바일
이런 마스터피스를 이제야 보다니... 성실수인 센세를 기다리는 재미를 이만큼이나 놓쳐서 아쉽다(ᵕ̣̣̣̣̣̣﹏ᵕ̣̣̣̣̣̣) 하 진짜 할배리는 물론이고 다른 리그원들도 다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고 현실감 넘쳐서 너무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9ee]
2021.07.23 (17:15:08)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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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큰배리(in 11세)가 같이 안자냐고 했을때 뱃 ??? 하는거 너무 웃겨ㅋㅋㅋ 월리랑 리거들 각자 속으로 온갖 생각했겠지…! 속으로 자기합리화 오지는 할 너무나 원작이라서 귀엽고 웃김ㅠㅠㅋㅋㅋㅋ 드디어 배리 기억이 돌아왔어ㅠㅠㅠㅠㅠㅠㅠ 할 뚝딱거리는거 너무 좋음ㅠㅠ 원래대로 돌아왔는데도 배리 반응 세심하게 살피면서 같이 꼭 붙어 자는거 훈훈하고…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진짜 내가 너무 사랑해… 곧 끝이라 생각하니 너무 아쉽지만… 센세가 의도한대로 맺고 끊긴다면 그게 대작의 시작과 끝일거야… 붕키 계속 복습하면서 기다릴게… 마니마니 사랑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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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3 (17:33:36) 신고
ㅇㅇ
센세는.. 아니 선생님 어쩜 이렇게 성실해? 센세는 산타클로스야?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한두 편도 아니고 안 본 편이 좌르륵 이어져서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 나도 과거 갔다가 돌아온 줄 알았어 행복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햐 할이 저번부터 직접적으로 우직하게 부딪쳐서 배리를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게 참 좋다 미래의 내게 친구가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어린 배리에게 널 소중히 하는 사람들을 말해주는 거나 둘의 관계를 소중히 해서 남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는 거나.. 오리 귀여워하며 즐거워하는 배리ㅋㅋ에 그 고생에도 만족스러워하는 것까지 완벽함 이게 우정이면 난 친구가X 도중 월리가 배리 돌보며 플래시의 레거시를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도 감동이고 리거들의ㅋㅋ 각기 다른 반응도 너무 귀여워 클락 이제 애아빠라고 눈치 빠른 거나 웃겨 죽는 다이애나나 와중 파산된 김에 냉큼 판 엎는 할이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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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3 (17:33:44) 신고
ㅇㅇ
물론 제일 흥미진진한 건 몸도 기억도 돌아온 배리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지 그런데 할 여기서도 내심 허전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다 하면서 배리가 혼란스러워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하는 거 찐 아니냐.. 언제든 배리가 우선인 할 좋아.. 흑흑 끝이 다가오는 건 싫은데 기승전결 갓벽하기만 하네 역시 1부 완결내고 2부에 외전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어디서든 에어컨 빵빵하게 받고 센세도 더위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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