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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01:24

 

 

그리고 그 서툰 솜씨로 편지를 써내려갔다. 

 

자신과 함께하는 생활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와 그의 사랑이 절대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쓰고, 새로이 만난 사람과 부디 행복하게 지내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을 써놓았다. 다른 연인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둘 사이에 무언가 맞지 않는 점이나 불편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니, 그저 '사람'의 이별으로서 둘의 관계를 마무리 된 것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어떤 부담감이나 불편함도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리도 늘어 놓았다. 레스타는 얼마 전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글씨는 마치 그림을 그린 것처럼 몇 번이나 선이 덧대어 있었고, 맞춤법도 고르지 않아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진심을 다해 자신의 옛연인에게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는 편지를 써내려갔다. 혹여나 직접 전해주게 되면 미련이 남을 것으로 보일까봐 겁이나 그의 부하의 손에 들려보냈다. 아니, 그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간만에 마주한 반가움에 또 그리움에 정말로 그에게 매달려 울지도 몰랐다. 레스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편지는

 

"그딴 흉한 물건은 뭣하러 가져왔냐? 끽해야 사랑해요 징징징, 아니면 돌아와요 징징징. 이별 편지가 둘 중에 하나라는 거 모르냐? 갖다 버려라."

 

받는 이에게 다가서지도 못하고 봉투 한 번 열려보지 못한 채 거절당했다. 유타비치는 문이 굳게 닫힌 알도의 집무실 앞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서성였다. 그는 자기 대장의 성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만류한다고해서 마음을 돌릴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로 버려야 하나, 하고 잠시간 고민을 했으나 제 손에 편지를 들려주던 레스타의 파리한 얼굴과 억지로 지어보이던 미소가 떠올라 차마 그러지 못했다. 종종걸음으로 제 방에 들어선 유타비치는 주인 잃은 편지의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의 손길에는 레스타에 대한 미안함과 그래도 만에 하나 알도가 편지를 찾았을 때 온전한 상태로 돌려주고 싶다는 약간의 기대감이 섞여있었다. 아마도 정성스럽게 골랐을 고급스러운 종이 위에 글쓴이의 우아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악한 글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종이 끄트머리가 붉게 물든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받는 이가 아니었으나, 보내는 이 대신에 눈물을 짓고 받는 이 대신에 죄책감을 느꼈다. 일반적인 연인들의 사이에서야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그는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알도와 레스타의 관계 때문이기도 했고, 레스타가 자기와 동료들의 목숨을 몇번이나 구해준 탓이기도 했다. 원망. 그러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기 대장의 편에 서서 그를 옹호하고 잘 포장하게 될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편지를 다시 봉투에 조심스럽게 넣어 제 품에 두었다. 전후사정도 모르는 천박한 이들에게 이 편지가 놀림을 당한다면, 그건 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틈틈이 레스타의 편지를 읽는 것은 유타비치의 취미 아닌 취미가 되었다. 그동안 시간은 꽤나 흘렀다. 유타비치는 이제 레스타의 얼굴보다는 레스타의 글씨체가 더 익숙했다. 그리고 알도는 레스타를 밀쳐내고 만나던 여자와 헤어지고 또 두세 명의 여자를 갈아치웠다. 처음에 만나던 여자는 까만 머리칼에 오크색 눈을 한 육체적인 굴곡이 심한 여자였다. 개떼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래서, 라고 짧게 내뱉었다. 몇 주, 아니 며칠이 지나고 알도는 옆에 다른 여자를 끼고 나타났다. 금발에 여리여리한 몸매였다. 그리고 그 다음번 여자는 푸른 눈에 얼굴이 새하얀 사람이었고, 다음번은 탐스러운 금발에 벽안을 지닌, 하얗고 여린 몸의 소녀같은 여자였다. 개떼들이 그래서는 그런데로 바뀌었지만, 정작 알도는 알아채지 못했다. 평화의 시대. 누가 연애를 어떻게 하든 무슨 큰 문제를 삼겠는가. 유타비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금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의 끄트머리가 많이 닳아 있었다.

 

"뭐하냐?"

 

손에 들린 편지를 놓친 유타비치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한 때는 워대디라고 불렸던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물고 이죽대고 있었다.

 

"돌려주십시오, 하사님."

"연애 편지냐?"

"아닙니다."

"뭔데 그래?"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돌았다. 그는 저보다 한참은 작은 유타비치의 팔에 닿을락말락한 높이로 편지를 들고 편지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서툰 글씨로 쓰여진 옛날 구어체의 단어들이 퍽이나 우스웠다. 하지만 그 언저리에서 '알도'라는 이름을 찾아낸 그는 웃음을 멈추고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내려갔다. 유타비치가 포기한 듯 씩씩거리고만 있을 때쯤, 그는 입을 열었다.

 

"이거, 네 거 아니지?"

"주인이 없는 겁니다."

"헤어졌다고?"

"저는, 저는 모릅니다. 돌려주십시오."

 

그는 아무런 대꾸없이 유타비치에게 편지를 돌려주었다. 유타비치가 경례도 없이 쪼르르 사라져버렸으나 그는 상념에 잡혀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그 언젠가 본 기억이 있다. 알도 레인의 옆에서 부드럽게 웃음짓던, 이상하게도 밤에만 나타나던 남자. 어떤 놈들은 친구사이라고 했고, 어떤 놈들은 알도 레인이 물고 빠는 몸파는 사내라고 했다. 그러나 개떼들은 연인 관계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남자와 남자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기는 했으나,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달빛에 빛나는 부드러운 금발을 하나로 곱게 묶고 레인 중위의 옆에서 조곤조곤 속삭이는 모습이 생각났다. 헐레벌떡 마중나온 레인 중위에게 서류를 넘겨주며 뺨에 키스를 하던 것도 떠올랐고, 제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얼굴도 기억이 났다. 그런 단편적인 기억들에 그는 자조어린 웃음을 지었다. 저와 상관도 없는 남자의 모습을 퍽이나 많이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다 끝났다니 더 이상 볼일도 없는 인사다. 하지만 들어야 할 사람에게 닿지도 못했을 그 마지막 말들이 떠올라 그는 괜히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담배연기가 식도를 타고 들어간 양, 속이 편치 않았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레인 중위의 옛 연인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겨우 며칠이 지난 주말 밤이었다. 꽤나 쌀쌀한 날씨에도 얇은 실크 드레스 셔츠 한 장만 걸치고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돈 콜리어는 우연히 보았다. 그는 떨어진 술과 담배를 사러 나가다가 괜히 기분이 울적해 펍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그 마을 공원에서 레스타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달도 없는 밤에, 우울하게 번지는 가로등불은 레스타의 가는 몸을 더 연약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돈 콜리어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는 오지랖을 부리는 성격도 아니었고 날은 너무 추웠으며 그의 기분은 굉장히 바닥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이상하게도 그의 발걸음은 가던 길을 멈췄고, 그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춥지는 않으십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다 끝난 마당에."

 

레스타는 여전히 눈을 닫은 채 대답했지만, 자신의 몸에 둘러지는 온기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몸에 걸쳐진 옷이 군복임에 놀랐고, 제 눈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의 얼굴에 서렸던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깊은 절망만이 남아있었다.

 

"날이 춥습니다."

"돌려 드리죠."

 

레스타가 금방이라도 벗어낼 것 같자, 돈 콜리어는 당황하여 레스타의 두 손을 꼭 쥐고는 난데없는 오지랖을 부렸다. 그로서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혹, 혹시 음악 좋아하십니까?"

 

 

 

 

돈 콜리어의 여정은 식료품점에서 펍으로 펍에서 공원으로 변하여, 예정에도 없던 재즈 카페에 도착 깃발을 꽂았다. 다행히도 카페 안은 훈훈했고, 으슬으슬하던 몸은 금세 녹았다. 그는 약간의 나른함을 느끼며 재즈 밴드가 잘 보이는 자리로 레스타를 안내했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스타의 얼굴을 보며, 나도 내가 뭘 하는 지 모르겠노라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콘트라베이스의 현이 튕기며 낮고 단조로운 음을 만들어냈다. 그 둥둥 거리는 소리가 마치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돈 콜리어는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레스타에게 괜찮냐고 물었으나, 레스타는 상관이 없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턱을 괴고는 재즈 연주자들만을 응시했다. 머리칼로 반쯤은 가련 레스타의 옆모습- 사실 돈에게 그 옆모습은 매우 새롭고 낯설었다. 높지만 부드럽게 휘어진 코와 예쁘게 다물린 입술, 푸른 눈을 모두 덮을 것만 같은 긴 속눈썹, 턱을 괴고 있는 가느다란 손목과 동그란 어깨. 그의 귀에는 어떤 음악도 들려오지 않았고 그저 콘트라베이스만이 귓가에 서서 현을 튕기는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레스타의 모습을 훑을 때마다, 콘트라베이스는 둥, 둥, 둥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묘하게 안정감을 주기도 했고, 또한 흥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점원이 커피잔을 내려 놓는 소리에 그는 그러한 환상에서 깨어났고, 돈을 지불했다. 레스타의 눈길은 여전히 연주자들에게 향해있었다. 

 

늦은 시각이어서였는지, 세 곡쯤 더 연주를 한 후에 재즈 연주자들은 악기를 모두 정리하여 무대를 내려갔다.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돈 콜리어는 식은 커피잔을 손에 쥐고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고민했다. 자신이 무작정 데려오긴 하였으나 자리에 앉은 뒤로는 어떠한 대화도 없이 음악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현실을 맞닥들이게 되면 그는 어떤 이야기라도 꺼내야만 했다. 그가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단어 몇 개를 꺼내는 사이, 레스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당황하여 레스타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레스타가 향한 곳은 출구가 아닌 무대 위의 피아노 앞이었다. 레스타는 우아한 표정으로 점원을 한 번 쳐다보더니, 승낙의 고갯짓을 얻고는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까의 연주자들과는 조금 다른 풍의 무거운 피아노 곡을 연주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가락과는 다르게, 짙은 슬픔이 피아노 아래로 내려 앉아 카페 구석구석으로 스물스물 퍼져나갔다. 돈 콜리어는 레스타가 말했던 '끝'을 떠올렸다. 그 끝을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 모든 것은 레스타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담겨 있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레스타가 연주를 마치자 카페 구석구석에서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고, 레스타는 우아한 동작으로 인사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돈 콜리어는 혹여라도 레스타가 그대로 카페 밖을 나갈까 겁이나 몸을 반쯤 일으킨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레스타는 그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고마웠어요. 커피도, 무대도. 마지막 인사치고는 꽤나 낭만적인 밤이군요."

"저,"

"안녕, 무슈."

"레, 레스타."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뱉자, 그는 놀라서 나가려던 몸을 돌려 세웠다.

 

"나를 아나요?"

"술 한 잔 같이 해주신다면, 말씀드리죠."

 

레스타는 돈 콜리어에게 몸을 잔뜩 붙이고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서, 당신은 며칠짜리 영원을 약속하려고?"

 

알 수 없는 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을 기다리는 레스타의 얼굴에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내일 여기서 다시 뵙고 싶다는 약속은 드릴 수 있겠는데요."

 

돈 콜리어의 말에 레스타는 마음에 드는 대답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작별 인사와 함께 문을 나서는 레스타의 뒷모습을 보며 돈 콜리어는 종이와 펜을 들어 밤새도록 그를 위한 글을 써내려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연애 편지라. 둥둥, 낮게 울리는 소리는 끊일 줄을 몰랐다.

2020.08.03 (01:48:14) 신고
ㅇㅇ
모바일
와 ㅜㅜㅜㅜ 제목부터 달려들어왔어요 센세 ㅜㅜㅜㅜㅜㅜ 열심히 편지를 썼을 레스타 생각하니 맘이 아프다 ㅠㅠㅠㅠ 알도는 어쩌서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돈이 빨리 레스타 둥기둥기 해조라 ㅜㅜㅜㅜ 센세는 어나더 주라 ㅜㅜㅜㅜ 너무 좋아요
[Code: 0e91]
2020.08.03 (04:38:19) 신고
ㅇㅇ
모바일
와 글 분위기 미쳤다 진짜.... 제목부터 넘 짠내 났는데 레스타 찌통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알도 나쁜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이별하고도 레스타 닮은 사람들 만나는 거 보면 알도도 아직 마음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르냐 진짜ㅜㅜㅜ 그래도 돈이 레스타 상처 보듬아줄 것 같아 다행이야 레스타가 돈한테 연애편지 쓰는 걸로 어나더ㅜㅜㅜ 워레 행쇼하는 거 보고싶어오ㅠㅠㅠㅠㅠㅠㅠ
[Code: b63f]
2020.08.03 (09:58:39) 신고
ㅇㅇ
모바일
분위기 담담하고 건조한데 약간 축축한 느낌도 들고ㅜㅠㅜㅠㅜㅜㅠ 아 너무 좋다ㅠㅜㅜㅜㅠ 레스타 글 배워서 편지까지 썼는데 결국 알도한테 전해지지 못한 게 너무 맘 아프다...ㅠㅠㅜㅜㅠ 알도ㅠㅜㅜㅠ 여자 갈아치우면서 점점 렛시랑 비슷한 외양인 사람들 찾는 거 보면 마음 없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ㅜㅠㅜㅜㅜㅠ 그와중에 워대디 진짜 존멋ㅠㅜㅜㅜㅜ 벤츠의 느낌이 난다ㅠㅜㅜㅜㅠ 돈이 렛시를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ㅜㅜㅠㅜㅠ 센세 이건 진짜 어나더가 꼭 필요해요ㅠㅜㅠㅜㅜㅜㅜㅠ 젭발 어나더ㅠㅜㅜㅜㅠㅜ
[Code: d024]
2020.08.05 (20:18:13)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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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ㅜㅜ
[Code: e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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