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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2 21:12

방령은 주저앉은 채로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밤하늘은 은은하게 풍기는 꽃내음과 술내가 진하게 섞여서 반짝거렸다. 방령은 끝까지 이렇게 있어 볼 요량이었다. 홍설에게는 손끝도 대지 않고 홍설이 뒤척이다 술에서 깨면 그냥 그대로 보내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를, 아이의 생일을 보내려고 했었다. 그랬는데. 
금방 다리가 저려왔다. 방령은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나름으로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이런 것 때문에 흔들린다. 이렇게나 사소한 것 때문에. 

방령은 홍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령은 홍설의 겉옷을 벗겼다. 술을 얼마나 마신 것인지 홍설답지 않게 깨어나질 못했다. 차고 있던 칼도 빼내었다. 칼은 여전히 무거웠다. 홍설은 아직도 이걸 지니고 다닌다. 
부엌 딸린 단칸방이 전부인 집에는 홍설을 누일 곳이 따로 없어서 방령은 하는 수 없이 아이와 홍설을 나란히 침상에 눕혀야 했다. 술내를 잔뜩 풍기는 이를 아이 바로 옆에 두고 싶지 않아서 방령은 아이를 최대한 안쪽으로 옮겼다. 사실 속내는 그것보다 아이와 홍설을 같이 두어도 되는 것인지가 마음에 걸렸음이다. 방령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상했다. 천지간에 부모와 자식이 같이 있는 것처럼 마땅한 일이 없을 텐데, 방령은 이것이 너무 이상했다. 
그냥 마당에 버려 놓을걸. 생각들이 엉기어갔다. 

선선한 여름밤이지만 아이의 체온은 조금 높아서 아이의 머리칼에는 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 방령은 아이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부채질을 해주면서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저 자는 얼굴을 바라봤을 뿐인데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올랐다. 방령은 이 아이를 정말로 사랑했다.  
그 옆에서 고요하게 홍설의 숨소리가 넘어왔다. 없던 이의 숨소리라 그럴까. 품었던 이의 숨소리라 그럴까. 자꾸 방령에게 홍설이 흘러 들어왔다. 
방령은 보는 사람도 없건만 괜히 머뭇거리며 홍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내려다보는 홍설과 아이의 얼굴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닮지나 말지. 목숨보다도 더 아끼는 아이의 아비가 영락없이 눈 앞의 남자라는 걸 외면할 수가 없어졌다. 
얼굴을 돌린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건만 방령은 눈앞에서 만이라도 도망쳐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짧은 사이에도 방령의 눈에는 흘러내린 홍설의 머리카락이 걸렸다. 방령은 저도 모르게 그것을 조심히 넘겨주다가 급하게 손가락을 접었다. 그 체온이, 감각이 계속 손끝에 남았다. 방령은 그것만을 손끝에 담은 채 아이와 홍설에게 밤새 부채질을 해주었다.
 
설핏 잠이 들었던 방령은 불편한 자세 때문에 일찍 깼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래도 해야할 일이 많았다.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니까. 방령은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방을 나왔다.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방령은 아이와 홍설의 생각으로 가득 차서 몇 번이고 일을 낼 뻔했다. 아이에게 홍설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을지, 그래도 한 번쯤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아비와 생일상을 같이 받도록 하는 것이 나을지 고민했다. 어쩌면, 어쩌면 홍설이 눈치를 챘을 지도 모른다. 방령은 그게 기대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끝을 보지 못하고 지치기만 한 몸을 방령은 좀 쉬게 하고 싶었다.
 
홍설은 눈을 떴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마구 삼켰고 그 다음엔, 다음엔. 방령을 찾았었다. 어딘가로 내던져 놓지 않았다면 여기는 방령의 집이겠지.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찰나 홍설은 제 옆에서 스며오는 말랑한 온기를 느꼈다.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홍설을 향해 모로 누워서 홍설의 팔을 꼭 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홍설이 몸을 살짝 뒤척이자 아이는 통통하고 보드라운 손가락을 꼼질거리면서 홍설의 품으로 좀 더 파고들었다. 홍설은 아이가 혹시나 깰까봐 숨을 쉬는 것도 멈춘 채 아이를 바라보았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저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제 것이 아니었다. 홍설은 입안이 썼다. 
홍설은 붉으스름한 아이의 뺨에 살짝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따사로운 눈송이 같았다. 살짝 손끝이 닿았을 뿐인데 왜인지 손끝에 열이 올라 울컥했다. 방령의 아이다. 홍설은 더이상 아이를 만져볼 생각은 않고 내내 바라보기만 하였다.

으으으흐흥. 
아이가 옹알이를 하며 깼다. 아이는 홍설을 잡고 있던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그대로 기지개를 쭉 폈다. 성정이 순한지 잠투정도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들어온 것이 제 어미가 아닌 다른 이인데도 낯가림도 없었다. 두어 번을 더 뒤척이면서 발짝발짝하더니 홍설을 보고 눈을 접어 웃었다.

"호정이 일어났어?"

어미는 귀신같이 아이가 깬 것을 알아채고 방으로 들어왔다. 홍설의 품안에 있다시피한 아이를 보고 방령은 급하게 다가가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는 익숙한 듯이 제 어미를 두 팔로 꼭 안았다. 

"으응. 이러나떠! 지금 호뎡이 땡일이지!"

긴장했던 것도 잠시, 일어나자마자 생일을 찾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방령은 웃음을 가득 머금고서 아이의 뺨 위로 애정을 그대로 풀어놓았다. 홍설은 그런 방령을 바라보았고 방령은 그 시선을 못 본 척 했다. 
방령에게 폭 기대서 눈이 닿는 곳마다 한참을 쳐다보던 아이는 이제 확실히 홍설이 눈에 들어온 듯 짧은 손가락으로 홍설을 가리켰다.

"어, 호뎡이 아능데!! 아능데!!!... 누구떼요?"

"어제 호정이 구해주신 분이지. 자, 내려서 인사드리자."

"오!!!"

아이는 작은 머리 안을 굴리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눈동자를 돌리더니 이내 확실히 생각이 난 듯 (생각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허리를 크게 숙이고는 홍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고마뜸니다! 호뎡이 땡일이에여!"

아이는 홍설 앞으로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가 뭔가 석연치 않은 듯 곤란한 표정으로 방령을 바라봤다. 방령은 어제처럼 웃으면서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 더 펴서 그 손끝에 살짝 입맞춰주었다.

"긍데 땡일엔! 뭐하지?"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작 생일이 무엇인지는 모르면서 마냥 들떠있던 아이의 천진함을 방령은 사랑했고, 홍설은 이 모든 것이 서먹했다. 

"호정이가 세상에 온 날이니까 예쁜 옷도 입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지."

방령은 아이의 생일빔과 한쪽에 잘 개켜 놓았던 홍설의 옷을 들고 왔다. 방령은 돌아서서 아이를 단장시켰고 홍설도 몸을 일으켜 준비를 하였다. 말 없이 옷을 입던 홍설이 나직이 한 마디를 던졌다. 

"정 장주 아이인가? 예쁘군. 너를 많이 닮았어."

아이의 옷을 입히던 방령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홍설은 방령의 무언을 긍정으로 알아들었다. 방령은 씁쓸한 미소를 아무도 모르게 지었다. 나란히 누워 온기를 주고받아도 이 남자는 모르는 거다. 방령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손끝은 무뎌졌다.  

"아이… 이름이 호정이야?"

"알아서 뭐하게."

홍설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름을 묻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나, 라는 평범한 답을 낼 수도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홍설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나는 왜 이 아이의 이름이 알고 싶을까.   

"호뎡이! 마호뎡!"

아이는 몸을 크게 돌리며 말했다. 아직 다 여미지 못한 푸른 빛 옷자락이 물결처럼 너울거렸다.

"마...호정? 왜?"

방령은 모른 척 아이의 옷을 마저 매무시하였다. 옷을 다 차려입은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방 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그것이 비좁아 마당으로 나가버렸다.

"아이 아버지는 오지 않는 건가? 자식 생일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다니 형편없는 자로군."

작은 마을에 숨어 살듯이 지내는 것을 봤을 때부터 어렴풋이 눈치는 챘었으나 아비의 성 조차 받지 못할 줄은 몰랐다. 군자인 것처럼 굴어놓고 실상은 제 핏줄도 챙기지 않는 소인배였을 줄이야. 홍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지도 모를 울화를 저도 모르게 쏟아내려다 무심한 눈길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방령을 마주하고는 일순간 멈칫하였다.

풋. 
방령은 홍설을 다시 본 이래로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웃었다. 

"왜 웃지?"

"너도 맞는 말을 할 때가 다 있네, 싶어서."

홍설은 방령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령은 다시금 무심한 얼굴로 돌아섰다. 결심이 섰다. 그냥 이렇게 끝내버리자. 어차피 아이도, 홍설도 몇 년 후엔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흘러가 버리는 날로 만들면 모두가 그냥 살던 대로 살 수 있겠지. 

"아버지는 있는 게 좋아. 아이한테도. 그리고 너한테도."

홍설은 뒤돌아 있는 방령을 굳이 쳐다보지 않았다. 눈에 열이 올라 따끔거렸다. 마른침을 넘기는 목울대도 금방 뜨거워졌다. 홍설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지 계속 머물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항상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밥 먹고 가. 아침은 먹고 가."

방령의 말이 홍설을 붙잡았다. 방령은 말을 하면서도 후회했다. 분명 누군가는 상처 받을 것이었다. 아니면 전부 다. 매번 이랬다. 
그럼에도 그렇게 되었다.





신변성랑자 홍설방령
2020.08.02 (21:24:36)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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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합니다 ㅠㅠㅠㅜ ㅠㅠㅠㅠㅠ방령아 홍설아 ㅠㅠㅠㅜㅜㅜ
[Code: 12cb]
2020.08.02 (21:50:37) 신고
ㅇㅇ
모바일
센세 그래서 셋이 살림 차린다고요?ㅠㅠㅠㅠㅠㅠㅠ 호정이 부호정 될때까지 억나더 기다릴게요 여기 누워서....ㅠㅠㅠㅠㅠㅠ
[Code: 3f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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