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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ㄴ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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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 부생한천 웨이란 주일룡백우




문득 잠에서 깼을 때, 물 먹는 솜처럼 무거운 몸뚱이에 한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가 띵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몸살인 듯했다. 하기야, 왕 의원을 만나 갑자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가 찬물로 샤워한 시간이 길었으니 병이 날 법도 하다. 잠시간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한천이 앓는 소리를 내며 겨우 옆으로 돌아누워 휴대전화를 찾았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휴대전화를 가져와 허 서장에게 연락하려는데, 그보다 먼저 도착해있는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허 서장의 문자였다.


[오늘 그냥 쉬어라. 푹 쉬고 밥 잘 챙겨 먹어.]


근무 태만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문자 내용을 확인한 순간 휴대전화를 스르륵 놓친 한천이 그대로 눈을 감았다. 사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무거워 더는 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힘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 낫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하며 그대로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이마를 덮는 서늘함에 한천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몸은 나아지기는커녕 상태가 더욱 나빠져서는,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분 못 할 지경이었다.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눈을 감자 이마에 있던 서늘함이 뺨으로 옮겨졌다.


"한천씨? 일어난 거예요?"


걱정스레 물어보는 목소리는 퍽 익숙한 사람의 것이었다. 도저히 대꾸할 수가 없어 가만히 있자 그가 다시금 한천을 불렀다.


"한천씨?"


조심스러우면서도 불안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목소리에 한천은 결국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역시나, 흐릿한 시야에 부생이 들어찼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진짜 션부생인가? 내가 아픈 걸 알고 왔나? 아닌데, 일어나자마자 다시 자서 아무도 모를 텐데.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멍한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천이 깬 것을 확인한 부생이 대신 말했다.


"허 서장님 부탁으로 왔어요. 쉬라고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니까 걱정되셨나봐요."


허 서장이 항상 답장을 꼬박꼬박하는 한천이 연락이 없자 걱정한 것은 사실일 테지만, 과연 부생에게 부탁했을지는 영 의심스러웠다. 아마 그가 직접 오려는 것을 부생이 막았을 것이다.


"일단 좀 더 자요."


부생이 손을 들어 한천의 눈을 감겨주며 말했고, 한천은 거짓말처럼 다시 밀려오는 졸음에 옅은 숨을 내쉬었다. 지금 잠들었다가 깨면 당신이 없을까. 그건 싫은데. 적어도 부생에게 계속 있어달라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몸이 여간 지친 것이 아닌 탓에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잠들어야 했다.




드문드문한 기억 속에서 부생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얼마간 왕 의원 탓에 청소를 소홀히 한 집을 대신 치워주는 것인지 작은 소음들이 끊이지 않았고, 이따금 조심스럽게 한천의 이마를 짚어 열을 재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천이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 부생은 방 안에 없고 웬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한천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직도 온몸이 쑤셨지만, 그래도 움직일 정도는 됐다. 그보다, 무슨 냄새지?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의 진원지가 궁금해져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찰나, 그보다 먼저 부생이 들어왔다.


"깼어요? 몸은 좀 어떻습니까?"


한천을 보자마자 깜짝 놀란 부생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한천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부생의 손이 그의 이마를 덮었다.


"열은 아직도 나는데... 일어나도 괜찮아요?"

"네, 덕분에 괜찮아졌습니다."


확실히 처음 왔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잔뜩 잠겨 거칠어진 목소리가 영락없는 병자였다. 부생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뭐라도 좀 먹어야겠네요. 죽 만들었으니까 가져올게요."

"죽이요?"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 한천에 부생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죽이라니.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건 당연하다만, 요리는 정말 의외였다. 한천은 어쩌면 자신이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해 죽까지 만든 부생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했다.

한천은 고집이 세지만 인정이 빠르기도 했다. 모순된 말이긴 해도 여태까지의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가장 적절했다. 조금이라도 제 생각과 엇나가면 부러질지언정 절대 굽히지는 않는 주제에, 한번 마음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황을 받아들였다. 때에 따라서는 온 마음을 쏟기도 하고, 끝이 없을 것처럼 무너지기도 했다.

이번 같은 경우는 당연히 전자였다. 물론 마음을 깨닫자마자 드러누워버렸지만, 어찌 됐든 한천은 더 이상 부생을 거부할 수 없었다. 갑자기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이것은 자신도 조금 의아했는데, 여태 자신의 지난날을 생각하더라도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탓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부생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단순히 줏대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른 인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고,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단 말이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가 첫 만남부터 이미 정상의 범주를 벗어났기 때문일까.


"간은 맞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먹을만 할 겁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찰나, 부생이 다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있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이 시선을 끌었다. 고소한 냄새가 더 가까워지자 이제야 허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부생은 침대 옆 서랍에 쟁반을 올려놓으며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던 한천이 죽그릇을 가져왔다. 적당히 따뜻한 것을 손에 쥐자 몸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진짜 직접 만든 겁니까?"

"당연하죠. 아빠한테 배워서 요리는 나름대로 자신 있어요."


씨익 웃으며 말하는 부생에 그를 따라 웃은 한천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대로 죽을 떠서 먹으려는데, 별안간 속이 은근하게 당겨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마치 누군가 돌덩이로 짓누르는 듯 명치께가 답답해졌고, 숨 쉬는 것이 다소 불편할 정도의 갈증이 찾아왔다. 여전히 머리가 무겁고 시야는 몽롱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정신 상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지. 죽 속으로 서서히 잠겨드는 숟가락을 멍하니 보고만 있던 한천이 혀를 내어 입술을 축였다. 입안에서 맴도는 것을 당장 밖으로 내뱉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째서인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한천씨?"

"당신의 전부를 원해."


자신을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유난히 마음에 스며들어서,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깊은 눈빛이 유난히 견디기 힘들어서, 한천은 참지 못하고 속내를 왈칵 쏟아냈다. 한천을 살피려던 부생이 우뚝 멈추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 무슨... 무슨 뜻... 네?"


한참의 정적 끝에 부생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제대로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맹한 목소리로 되묻는 부생을 보며 한천은 드디어 가슴속에 쌓여있던 것들이 모조리 쓸려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저를 바라보는 부생을 보고 있자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두 번 말 안 해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한 한천이 그제야 죽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딱 먹기 좋게 간이 되어있었다. 요리 진짜 잘하는구나. 태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죽을 먹는 사이, 어버버거리던 부생이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인 끝에야 겨우 목소리를 냈다.


"혹, 혹시, 아파서... 그러니까, 정신없어서 그래요?"

"죽 맛있네요."

"진심으로 한 말이에요?"

"그보다 션 처장님은 식사하셨습니까? 시간이-"

"한천."


제 속이 엉망으로 뒤엉킨 것도 모르고 능청스레 다른 말만 하는 한천에 부생이 기어코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천이 고개를 들어 부생과 시선을 맞췄다. 엄청난 말을 했으면서 지극히도 느긋한 눈빛에 더욱 애가 탔다.


"장난칠 일이 아니야. 확실하게 대답해."

"...왜 장난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치 생사가 걸린 듯 절박하면서도 어렴풋한 기대가 묻어나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한천이 물었다. 그 순간, 부생은 말문이 턱 막혀 입을 꾹 다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니, 그야 당신한테 그럴 기미가 없었으니까. 당신이 내게 흔들리는 모습을 몇 번 보여준 건 사실이지만, 그 순간들만으로 확정 지을 수는 없었으니까. 당신에게 나는 특별일지언정 절대 유일이자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무수한 반박들이 머릿속을 휩쓸었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눈을 부릅뜬 채 저를 꿰뚫을 듯이 쳐다보기만 하는 부생에 한천은 들고 있던 죽그릇을 다시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릇과 쟁반이 맞닿는 소리마저도 지독한 소음처럼 느껴질 만큼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금 갑작스러운 건 인정하죠. 그런데 나도 이유는 모르겠고, 그래서 설명도 잘 못 하겠습니다."

"...."

"그냥... 정말 그냥이에요."


시선을 내리깐 채 말하던 한천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부생을 봤을 때, 그는 눈가가 빨갛게 충혈된 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세게 깨물고 있었다. 아픈 것은 자신인데 어째 부생이 더 환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적어도 이 문제는 당신이 나한테 이유를 따질 처지는 아니지 않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묻는 한천에 부생의 어깨가 작게 움찔거렸다. 머리가 도저히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한천의 말마따나, 부생은 그에게 왜 자신을 좋아하게 됐느냐고 이유를 물을 입장은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부터가 한천에게 첫눈에 사로잡혀 지금까지도 그를 쫓는 것이니 말이다. 한천이 이유를 물었을 때 부생은 당신이 나의 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없는 것은 부생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각인이란 것은, 짝이란 것은 말로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생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천과 자신은 명백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부생이 한천을 보자마자 각인된 것에 비해 한천은 그러지 않았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부생에게 휘둘리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부생이 전부가 되지는 않았다. 부생이 한천을 원하듯 그를 원하지 않았다.


"당신은 내가 전부가 아니니까."


꼭 작동을 멈춘 것처럼 둔해 빠진 머리로 겨우 생각하던 부생이 턱 밑까지 차오른 불안을 내뱉었다. 한천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그래서?"

"어, 어?"

"당신이 내 전부가 아니니까 나는 당신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뜻인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부생이 영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자 한천은 의아함에 가득 차 물었다. 저가 좋다고 대책 없이 밀어붙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머뭇거리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도 내가 좋고, 나도 당신이 좋다잖아요. 당신이 바라던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그런,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 부생이 결국 시선을 떨궜다. 그래,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것은 분명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것이 맞다. 하지만 막상 바람이 현실이 되자 덜컥 두려워졌다. 진작 떨쳐낸 줄 알았던 불안이 다시 싹텄다. 내가 당신을 원해도 되는 걸까. 감히 당신의 사랑을 욕심내고 바라도 되는 걸까. 나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사치를 누려도 되는 걸까. 여태껏 당신을 끈질기게 갈망했으면서 막상 이런 순간이 다가오자 겁부터 먹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웃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당신이 나를 원한다면 그저 완벽할 것만 같았는데.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되어 마침내 완전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리라 생각했는데. 과거의 상처는 여태 아물지 못해 부생의 마음을 할퀴었다.


"션부생."


부생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순간, 한천이 그를 불렀다. 퍼뜩 정신을 차린 부생이 고개를 드는 동시에 그의 손을 붙잡은 한천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몸을 가까이했다. 부생이 흠칫 놀라 손을 빼내려 했으나 한천은 어림도 없다는 듯 그의 손을 세게 쥐었다.


"뭐가 문제인지 말해."


자신을 똑바로 마주 보는 두 눈은 올곧다 못해 눈이 부셨다. 부생은 이대로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넘겨야 할지, 아니면 이 한심한 걱정들을 모조리 털어놓아야 할지 갈등했다. 제 생각에 최선의 선택은 그냥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한천에게 그런 볼품없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하지만, 분명 그것이 옳은 결정일 텐데도 부생은 쉽사리 입꼬리를 올려 웃지 못했다.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뭉개며 나를 뒤흔드는 것이다.

이제는 눈물이 넘실거리는 커다란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천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내가 필요 없어?"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만약 그렇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떠날 듯한 목소리에 부생이 다급히 대답했다. 사실 지금 한천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지만, 정말로 그가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함에 제 손을 쥔 그의 손을 덥썩 마주 잡았다. 아무리 불안하고 무섭더라도 한천이 곁에 없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신이... 내가 당신을 원하는 게 무서워."


결국 울음을 터뜨린 부생이 한천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말했다. 금세 축축이 젖어드는 어깨에 한천은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가 물었다.


"그게 전부야?"

"응, 그게 전부야. 그게 너무 무서워. 내가 당신을 원해도 되는지, 사랑해도 되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말을 이어갈수록 부생의 헐떡임이 더욱 심해졌다. 맞잡은 손은 그리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여리고 안쓰러운지, 미간을 살짝 좁힌 한천이 남는 손을 들어 부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격은 무슨 자격. 당신이 나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누가 그래?"

"내가 알아. 사실, 사실 나는 당신을 원하면 안 된단 말이야..."

"왜?"


왜냐니, 그야 내가, 내가- 차마 말 못 할 일들은 생각으로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눈물만 흘리는 부생에 한천이 제게 기대고 있는 그를 살짝 떨어뜨렸다.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 된 부생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한천의 손이 그의 뺨을 감쌌다.


"나도 당신의 전부를 원해, 당신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싶어. 이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겠지."

"...."

"그러니까 말해.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여기 있을 거니까."


한천은 부생의 눈가를 조심히 매만지며 말했고, 그에 부생은 결국 완전히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내가 당신을 이길 리가 만무했으니 당연했다.




그렇게 부생은 한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태어난 후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미친놈 취급을 받기 딱 좋은 이야기였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마음이 북받쳐 그것을 걱정할 정신도 없었다. 다행히도 한천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부생의 말을 들어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나긴 부생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한천은 크게 놀란 기색 없이 잠깐의 침묵 뒤에 물었다.


"그 일이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부생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후두둑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한천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아직도 말하지 않은 게 있죠?"


한천은 오늘따라 지나치게 예리했다. 조곤조곤한 채근에 머뭇거리던 부생이 곧 제 얼굴을 감싼 한천의 손을 잡아 내리며 말했다.


"엄마가, 쿤룬이 나한테 짝을 준다고 했어. 하지만 있지도 않은 짝을 갑자기 만든다는 건 불가능해. 아무나 붙잡아서 짝이 되라고 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나는 이미 쿤룬에게 각인됐으니까."


부생은 잠시 입술을 잘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쿤룬은 나한테 반드시 짝을 줄 거라고 했지. 분명 생각한 게 있으니까 그런 말을 했을 거야."

"...혹시 쿤룬이 나를 만든 겁니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천이 불현듯 깨닫고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부생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쿤룬은 신이야. 자기의 신력을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

"그러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쿤룬의 일부인 거지. 쿤룬과 똑같은 얼굴이 그 증거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친 부생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누구에게도, 하물며 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내 어머니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될까. 나는 당신이 쿤룬의 일부임을 알고도 모른 척 당신을 욕심냈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끔찍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한심하다고? 그것도 아니면 이렇게 해서까지 당신을 얻으려는 내가 딱하고 초라하게 보일까? 뭐든 간에 한천에게 부정당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설마 그런 것 때문에 이 난리 친 건 아니죠?"


한참이나 이어지던 정적을 깨뜨린 한천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흠칫 놀란 부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도통 마를 줄 모르고 그렁그렁 맺힌 눈물에 한천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번 꾹 눌렀다.


"진짜... 진짜, 겨우 그거 때문에?"

"겨우라니, 이게 얼마나-"

"얼마나 뭐? 나는 또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나 했더니, 지금 그런 걸로 이렇게 우는 겁니까?"


도대체 이 이야기를 듣고도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부생이야말로 한천의 반응을 믿을 수 없었다. 퍽 억울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부생에 입술을 달싹이던 한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신의 부모를 죽인 건 그 귀왕이라는 놈이고, 당신은 그냥 심장일 뿐이잖아요."

"심장은 몸의 중심이자 생명력의 근원이야. 종족을 막론하고 누구든 심장에 기가 가장 깊고 진하게 담겨있지. 그러니 내가 엄마를 죽인 거나 다름없어."

"심장은 몸을 살아있게 할 뿐이고, 몸이 어떻게 할지는 몸의 주인이 정하는 겁니다. 행동을 정하는 건 마음이지, 심장 자체는 의지가 없어요."


부생이 얼마나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든, 한천은 무척이나 단호했다. 애초에 그 일을 다시 끄집어내 따질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쿤룬의 일부인 게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당신이 말했잖아요. 쿤룬이 당신한테 짝을 준다고 했고, 그래서 내가 태어난 거라고."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을, 당신을 욕심내면 안 돼..."

"젠장, 도대체 누가 당신한테 그딴 말을 한 거야?"


의기소침한 부생의 모습에 한천이 기어코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짜증을 냈다. 순간 아찔하게 흔들리는 시야를 무시한 그가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나는 가장 완벽한 당신의 짝이잖아. 정말 당신만을 위한 사람이라고."

"...."

"그거 말고 중요한 게 있어? 나로는 부족해?"


마지막 물음에 부생은 순간 누군가 뒤통수를 망치로 갈긴 듯 머리가 띵해졌다. 당신으로는 부족하냐니, 그럴 리가. 당신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데. 그래, 나한테는 당신이 전부였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살아있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도 결국은 당신을 원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부생도 알았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치고 외면해도 자신은 한천을 포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니, 당신만 있으면 돼, 당신이 필요해..."


애써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애처롭게 말하는 부생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은 한천이 그대로 부생을 끌어안았다.


"당신은 정말... 아픈 사람한테 별짓 다 하게 만드는구나."

"미, 미안, 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사과하지는 말고. 당신은 잘못한 거 없으니까."


이 와중에도 제 탓은 절대 하지 않는 한천에 부생은 더욱 서럽게 울며 그를 마주 안았고, 한천은 부생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조용히, 그러나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그를 달랬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2020.02.15 (16:19:18)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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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수인 내 센세ㅠㅠㅠㅠ 재업 고마워 잘 읽고 있어요ㅠㅠㅠ
[Code: 4f9e]
2020.02.15 (17:27:03) 신고
ㅇㅇ
모바일
와 한천 존멋이잖아ㅠㅠㅠ 겁먹은 부생이 너무 안쓰럽고ㅠㅠㅠㅠ 한천 자기 마음 자각하고는 흔들림없이 부생이 불안까지 감싸주는 거 든든하다ㅠㅠㅠㅠ 둘이 행쇼해ㅠㅠㅠ
[Code: a59a]
2020.02.15 (18:25:00)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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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부생이 알게 모르게 자낮이었구나ㅠㅜ 근데 한천이 저러니까 너무 쩐다.. ㅠㅠㅜ개존멋
[Code: 3761]
2020.02.17 (01:48:29)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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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 진짜 너무 멋있어ㅠㅠㅠㅠㅠ나까지 반하게 만들면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
[Code: c985]
2020.02.22 (23:59:27) 신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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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ㅜㅡㅜ ㄴㅓ무 좋아오ㅠㅠㅜ좋아 미치게따ㅠㅠㅠ!!!!!!! 센세 하버드야 하버드ㅠㅠㅠㅠ박사학위임
[Code: 3c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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