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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21:12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레너드 맥코이는 낮은 말소리에 깨어난다.

시트와 살갗 틈에 고인 온기를 포기하고, 그는 상체를 반쯤 일으킨 채 뺨을 문질렀다. 조도를 낮춘 기숙사는 어둡고 따뜻하며 거주자 본인은 의식하기 어려운 마른 천과 목서 냄새가 났다. 창가에 가까이 붙은 맞은편 침대엔 인기척이 없었다.

“짐?”

대답에 대한 큰 기대 없이 맥코이는 뻣뻣한 어깨만 가볍게 틀고 침구를 빠져나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백사장 같은 시트만 남기고 비어 있는 맞은편 침대 위로 어슷하게 재단된 외광이 낱장처럼 놓였다. 커튼을 고정하는 끈이 풀려서 창틀 모서리에 걸쳐진 위성을 볼 수 있었다. 왼편이 살짝 가라앉았으나 커크라면 아마 보름달이라고 불러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위상 분류보다 동거인의 행방이 훨씬 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맥코이는 불안하게 눈만 깜박이다가, 곧 다시 재개되는 말소리에 청각을 모았다.

“그래요, 하지만” 으로 시작하는 긴 문장을 읊고 있는 사람은 젊은 남자인 것 같았지만 커크는 아니었고ㅡ너무나 분명한 백 가지 지표들ㅡ자세히 들으면 실제 대화에 비해 지나치게 또렷한 구석이 있었다. 희미하게 음악도 동반됐다. 영화나 그 비슷한 뭔가인 것 같았다. 손에 힘이 풀려서 마디의 압박감이 느슨해질 때 맥코이는 그가 전신을 긴장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짐 커크가 기숙사에서 불면증으로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가 영화를 트는 것 자체는 드물지 않았지만 그만큼 다른 사건들: 맥코이가 밤새도록 이름을 부르면서 수소문하고 울 것 같은 기분으로 거리를 뛰어다니고 결국엔 멍든 채 뒷골목에 누워 있는 몸을 업어 데려와야만 하는 경우의 비율도 비슷했기 때문에, 그는 상황이 명확해질 때까지 다면적인 가능성을 고려하는 일이 습관화됐다. 바깥에서 재생되는 대화의 흐름을 오래 경청하고 그 일련의 문장들이 영화 대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뒤 맥코이는 길게 호흡하면서 뒤로 기댔다.

정확한 시각은 알 수 없지만 커크의 생활 주기에 입각해 생각하면 새벽 두세 시쯤 된 듯했다. 맥코이는 그의 언어에선 큰 의미가 없거나 아예 정반대의 뜻을 내포하는 (예컨대 “damn god”은 가끔 경건한 기도문 노릇을 했다) 욕설들을 모아서 짧게 투덜거렸다. 그 이상의 불만은 들지 않는다. 본인은 그게 체념과 비슷하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태초의 역병의 초기 증상에 더 가까웠다.

기숙사의 침실과 작은 거실을 나누는 갈색 문 너머에서 연한 빛이 새어나왔다. 도로 잠드는 선택지와 거실로 나가는 선택지를 놓고 맥코이는 잠시 갈등한다. 배경 음악엔 부드러운 관악기 반주가 얹혔다. 곡조가 제법 익숙했으므로 노래든 영화든 제목이라도 물어보자는 명목을 내세운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쓸어넘기면서 매무새랄 것도 없는 잠옷을 괜히 털어냈다. 문을 열고 나오면 긴 밤색 소파 한가운데에 앉아 두 다리를 몸 앞으로 붙이고 턱을 괸 제임스 커크의 뒷모습이 있다.

1인용 탁자 삼아 가져다놓은 세발의자 위에서 낮은 온더락 글라스가 반짝거렸다. 투명한 호박색 액체는 그냥 위스키라기엔 조금 어두웠는데, 저명한 유선형의 탄산음료 병이 잔 옆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맥코이는 조금 웃었다. 아주 우울할 때를 제외하면 커크는 위스키에 항상 콜라를 섞었다ㅡ맥코이는 그 부분을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에 맹세컨대 아니다.

소파 팔걸이에는 은박을 댄 초콜릿 포장지도 몇 개 굴러다녔다. 커크는 최대한 조용히 바스락거리면서 초콜릿 하나를 더 집는다. 뒤에서 보이는 볼의 윤곽선이 둥글어지자 맥코이는 입 안쪽의 살을 세게 깨물었다. 달에 하는 맹세는 실효성이 전무하다고 어떤 극작가*가 700년 전부터 당부했건만 23세기의 후손은 경시했던 것이다.

정면의 스크린에서는 시각과 청각 외에 아무것도 지원되지 않는 지난 시대의 영상물이 재생되고 있었다. 적어도 퍼스트 컨택트 이전의 작품이다. 인류가 다른 지성체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흑백까지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오래된 수채화 비슷한 색조의 화면 안에서 두 사람이 남청색 골목길의 가로등과 달을 조명 삼아 원무를 췄다. 둥근 빛들이 화면을 통과할 때 관객의 눈물뼈 위로 진주 같은 백등색 광택이 겹쳤다.

커크는 마른 입술을 가만히 벌리고 영화에 온 신경을 쏟았다. 별천지에 떨어진 일곱 살짜리처럼 보였다. 새파란 홍채는 아마 동공 둘레의 얇은 빛무리로만 남았겠지. 삽입곡의 자유로운 박자를 쫓으면서 무릎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보느라 맥코이는 커크를 선뜻 부르지도 못했다.

“잠이 들면 우리 영혼은 어디로 갈까요?”

초점이 세 번 전환될 때까지 생각하다가,

“난 달로 갈 거라고 믿어요.”

무작정 가사를 읊으면 허공에서 반주가 흘러나오는 세상 속의 2인이 팔을 뻗어서 서로 안고 거리를 활강했다. 화면은 눈동자와 달을 번갈아 대사한다. 색소폰과 피아노와 이름을 모르는 저음역대의 현악기. 커크가 가끔 휘파람으로 부는 곡조였다. 맥코이는 소파 등받이에 비스듬히 걸터앉아서 어린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짙은 눈썹을 이마 중간까지 들어올리고 상체를 돌렸다. 수백 년도 넘은 필름 세상의 낭만주의자들은 계속 노래한다.

달처럼 접힌 눈으로 맥코이를 올려다본 커크가 옆으로 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소파를 돌아 곁으로 가면서 그는 두 뺨으로 피가 집중되는 감각을 느꼈지만 서사를 위한 빛이 전부인 방 안에서 커크는 그 홍조를 볼 수 없었다.

몸을 붙이고 앉으면 솔기가 늘어난 면옷 아래의 살은 따뜻하고, 철이 들려면 아직 한 세기 정도 남은 듯한 룸메이트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영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눈꺼풀 뒤에서 막연하게 눈물이 고였다. 슬프지는 않았다. 맥코이는 숨을 들이마셨다. 슬퍼서가 아니다.

그는 이때부터 제임스 커크를 사랑했다.
 
2020.02.14 21: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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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쳤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너무 로맨틱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a635]
2020.02.14 21:22
ㅇㅇ
와...와.......이런 갓벽한 작품.... 센세 나지금 심장이녹았어 본즈가 커크한테 감겼네 나도 센세한테 감겼어...
[Code: 930a]
2020.02.14 21: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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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때부터 제임스 커크를 사랑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fce]
2020.02.14 21: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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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있는커크왤케 커엽지ㅠㅠㅜㅜㅜㅠ맥코이가 묘사하는 커크 넘 좋다
[Code: bc56]
2020.02.14 21: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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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그 찰나의 묘사가 너무 달콤하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62b]
2020.02.14 21: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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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는 정말 천재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둘의 이 독보적인 분위기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0bc]
2020.02.14 22: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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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센세를 사랑하게 돼버렸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b3c]
2020.02.15 00: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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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1ba]
2020.02.15 03: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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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진짜 독보적이에오 센세ㅠㅠㅠㅠㅠ 영화에 몰두한 커크랑 잠에서 깨서 커크 보고도 선뜻 부르지도 못하는 본즈... ㅠㅠㅠㅠㅠㅠㅠㅠ 콜라 타먹는 커크가 귀엽다고 왜 말을 못햌ㅋㅋㅋㅋㅋㅋㅋ 커크가 저렇게 사랑스러운데 본즈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잇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fb2]
2020.02.15 08: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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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 죽도록 사랑해
[Code: 4d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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