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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14:29

장례식은 초라했다. 모두의 사랑을 받던 청년의 끝과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았다. 리처드 존 그레이슨-웨인이라는 이름과도, 나이트윙이라는 이명과도 맞지 않는 끝이었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믿음직한 형, 동료였던 이는 너무나 쉽게 마지막 숨을 뱉고 가버렸다. 


고담은 드물게도 맑은 해를 내보였다. 마지막 가는 길마저 그녀석 답다고 생각했다. 관이 천천히 내려갈 때에도 주변에 선 그 누구도 울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평소 딱딱한 건 질색이라고 말하던 녀석답게 안식의 말을 읊어주는 신부조차 없었다. 한 모금도 피우지 못한 담배의 끝이 타들어갔다. 





데미안은 끝까지 횡패를 부리며 참석하지 않았고 팀은 개중 가장 얼굴낯이 안 좋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인 듯 보였다. 하늘을 날아 참석한 크립토인들은 침중한 표정이었고 월리는 결국 눈물을 보이게 되자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모두의 얼굴을 흐려놓은 딕의 얼굴은 마지막까지 저 홀로 환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그리고 그 미소는 나를 향한 게 아니겠지. 늘 그랬듯이. 


조촐한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던 이들은 해가 저물자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며 사라졌다. 한 사람만 남겨두고. 멀리 떨어진 나무 둥치에서 장례식을 지켜보던 제이슨은 망부석마냥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브루스의 모습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옆자리에서 훔쳐본 남자의 얼굴에도 눈물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제이슨은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기분에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어봤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을 언덕 위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빌런들 사이에도 첫번째 울새가 영영 추락해버렸다는 것이 그새 퍼졌는지 어둠이 두 사람을 삼켰을 때에도 고담의 하늘은 조용했다. 브루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미처 끝맺지 못한 말에 제이슨이 소리죽여 웃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어.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는 제이슨의 모습에 브루스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제 품에서 스러져간 이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 겨울 날, 골목길과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수많은 이들. 그들의 목숨이 쌓이고 쌓이다 그 무게에 짓눌려 숨을 쉬지 못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곁을 뎁혀주었던 온기가 딱 그만큼의 무게가 되어 그 위에 얹어졌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저를 향한 곧은 미소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줄 알았다. 놀랍게도. 


동녘이 터올 때가 되어서야 브루스는 묘비 앞에서 몸을 돌렸다. 제이슨은 점점이 멀어져 작아지는 브루스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다 시린 묘비로 시선을 돌렸다. 




적어넣을 것이 너무 많은 묘비에는 결국 이름만 남겼다. 그 누구보다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다녔으면서도 항상 철장에 갇혀있던 푸른 새는 죽고 나서야 비로소 아무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아무도 아니라면, 단지 딕 그레이슨일 뿐이라면... 

내가 너를 먼저 만났더라면, 내가 죽지 않았었더라면, 주변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그저 길을 걷다 만난 마음 맞는 청년 둘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물음이 돌고 돌았다. 

이제라면 그 미소가 날 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속으로 삭히던 물음들의 끝, 부질없는 물음이 불쑥 치솟았다 꺼졌다. 다 태운 담뱃불처럼 은근하고 느리게. 

2017.01.18 14:33
ㅇㅇ
모바일
찌통..
[Code: f293]
2017.01.18 20:12
ㅇㅇ
모바일
센세 최고야...
[Code: a308]
2017.12.09 17:26
ㅇㅇ
모바일
아아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553]
2018.02.10 04:11
ㅇㅇ
아 오진다.......
[Code: 9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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