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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1 00:30

ㄱㅈㅅㅈㅇ ㄴㅈㅈㅇ  

 








놀즈는 눈 안으로 희미하게 스미는 불빛을 감지했음. 감각이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한 건 통각이었음. 머리가 깨질듯이 욱신거렸고 온몸이 부서진 것처럼 아파왔음.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제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먹는 기관이 하나도 없었음. 온몸이 아프다고 다투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자신은 그저 눈을 떴다 감았다 무겁게 깜빡일 뿐이었음.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제게 말을 걸어온 것은 그때였음.

"정신이 좀 드나?"
"......여기가 어디냐."
"우리 산채다. 인적 없는 산속 깊은 곳에 쓰러져 있었지. 그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죽겠기에 데려온 거다."

놀즈의 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누군가 대답했음. 놀즈는 삐걱거리는 환청을 들으며 제 목을 좌우로 돌려봤음.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처음 보는 작은 방이었고 제 주변에 몇몇 사람이 빙 둘러 있었음. 죽어가는 이에 대한 자비로 구했다기에는 경계가 가득한 분위기였음. 놀즈는 자기가 어쩌다가 이곳에 떨어졌는가 회상하다가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막 떠올렸음.

"황제 폐하는! 폐하는 어찌 되셨지?"
"그따위것 관심 없는데. 황제가 바뀌면 뭘 해, 우리 생활은 똑같은걸. 우린 먹고살기에도 바빠."

황제를 그따위것이라 칭하는 불경하고도 퉁명스러운 대답을 필두로 험상궂은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음. 그 우악스러움에 놀즈가 당황해 말을 멈췄음.

"황제를 묻는 걸로 보아하니 근처 마을 오랑캐 침략에 튕겨나온 작자로구만. 거기 근위대에라도 있었나? 선황제께선 비명에 가시고 대공께서 이제 막 황제 대관식을 치르셨네만."

시끄러운 불평들 사이로 늙은이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음. 그제야 사람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졌음.

아 끝내...! 놀즈는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바닥이 주저앉는 것 같았음. 황태자, 황태자의 존재를 그들이 어찌 처분했는지도 궁금했지만 곧 묻기를 그만두었음.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랴 싶어졌음. 마지막으로 뵈었던 폐하의 성안을 떠올리고 놀즈는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었음.

 

 

 
황태자가 머무는 마을이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다는 소식은 그 다음 날 바로 황궁에 전해졌음. 그 마을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막아보려 버티다가 결국 함락당했고 이렇게 중앙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파발을 급히 보내게 된 것임. 사색이 된 황제가 얼른 군사를 보냈으나 들려온 소식은 희망 하나 없이 암울하기만 했음. 전투에서 크게 패해 병사들은 모두 죽거나 다쳐 전투 불능에 여전히 이민족이 기승을 부렸고, 정부에서 몇 번이고 군사를 다시 보내봤지만 이번에 침입한 대적이 얼마나 사나운 흉적들인지 모두 소용이 없었음.

마침내 황태자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는 보고를 받은 지경이 되었을 때, 몹시 다급해진 황제는 짐이 직접 가야겠다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음. 물론 모두가 황제가 궁을 비워선 안된다며 반대했음. 그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일각에서는 황제가 굳이 거기까지 쫓아가는 건 자신이 황태자를 버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인가 하고 황제의 의중을 가려 보기도 했음. 그래서 훗날 황태자가 황제가 되면 이 일을 빌미로 반대한 이들을 내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도 있었음. 어차피 반대는 예상했던 것이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황태자를 구하러 가려던 황제의 거동은 찬성으로 돌아서는 여론을 등에 업고 빠른 시일내 출정 준비를 마쳤음. 

그리고 많은 사병을 가지고 있던 대공도 기꺼이 자신의 힘을 거기에 보태기로 했음. 더없이 고마워하는 황제에게 황태자이자 조카님을 구하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한껏 겸손하게 굴었음. 황제가 출발하면 바로 따라가기로 계획을 맞추고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음. 마침내 황제께서 출발하셨다는 전령이 들었을 때 대공도 재빨리 제 말에 올라탔음.

"황제께서 출발하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 잘해드리거라."

한 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공의 명령은 바람처럼 신속하게 매복하고 있던 군대에 전해졌음. 대공은 좀 느긋하게 가다가, 이미 죽어 늘어진 형님의 시체를 껴안고 오열하는, 이 장대한 극의 마지막 장면만을 멋지게 연출하면 되는 거였지. 마치 시중에서 상연되는 연극처럼 일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음. 황태자가 머무르는 집과 마을을 침략한 이민족도 대공의 지시에 이민족으로 위장한 용병 부대였고, 황제의 최측근인 척 활동하면서 황제가 보낸 군대의 정보를 빼내어 군사들을 가는 길목에서 미리 다 처치하거나 아예 전혀 상관 없는 방향으로 빼돌렸음. 그러니 줄줄이 지고 실패할 수밖에. 물론 황제의 출정 찬성으로 여론을 휘모는 것도 대공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었음. 이제 전개는 절정을 지나 단 하나의 결말만을 남겨뒀지. 아무런 다중적 해석도 허용치 않는 아주 완벽한. 황제의 죽음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지만 좋은 기회를 맞는다면 먼저 처리하라고 일러두었고 황태자도 제 수하인 그 마을의 성주에게 책임지고 처리하라며 맡겨두었음. 성주도 대공의 힘으로 그 자리에 앉힌 자로, 이번에 공을 세우면 수도로 불러들이겠다고 계약과 맹세를 받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자신을 도울 거였음. 권력의 맛이란, 대공은 벌써 자신이 일인자가 된 듯 도취되었음.

 

 

 
깨어 있던 터에 운좋게 살아남은 놀즈는 그러나 집안 식솔 누구 하나 챙길 여력 없이 제 몸 하나 빠져나오는 것에 만족해야했음. 거대한 굉음을 내며 폭발한 집이 급격하게 불타며 무너지는 폐허에서 맨몸으로 여기까지 어찌어찌 살아 온 것만 해도 정말 천운이었음. 걷다시피 기다시피하여 그나마 안전하다 여겨지는 곳까지 왔음. 붉게 타오르다 이제 꺼멓게 꺼져가는 마을의 흔적들을 멀리 인기척 없는 산기슭에서 바라보며 놀즈는 눈앞이 깜깜해졌음. 이런 습격이라면 마을의 다른 집들도 무사할 리 없었고 산을 넘어 다른 마을로 가지 않으면 도움을 청할 길이 없어보였음. 그러다 습격자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이럴 바엔 남은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 낫지 않은가, 놀즈는 마을의 유력 가문이 모여있는 거리로 가서 남아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성주를 찾아 앞날을 도모하기로 했음. 놀즈는 지친 몸을 이끌고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음.

좁고 울퉁불퉁 험하던 길이 조금씩 넓어지고 평탄해졌을 때, 멀리서 많은 사람이 동시에 걷는 듯한 땅을 흔드는 진동이 느껴졌음. 근처 바위에 몸을 숨긴 채 긴장하며 숨죽인 놀즈 앞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뿌연 흙먼지 사이로 솟은 높다란 깃대에서 휘날리는 황가의 문장이었음.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반색한 놀즈가 저도 모르게 그들 앞으로 막 뛰쳐나갔고 맨 앞줄의 군사들은 갑자기 등장해 저들 앞을 가로막는 존재에 놀라 화살을 겨누었음.

"나는 황태자다. 나를 알아볼 이를 데려오라. 이 군대를 이끄는 자가 누구냐."

옷과 신발은 다 해지고 흙과 검댕을 뒤집어 쓴 행색이 더러웠지만 놀즈의 태도에 태생부터 난 듯한 당당함이 있었고, 황가의 군대 앞에서 목숨 걸고 그렇게 대담하게 황태자를 사칭할 사람은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놀라 뒤쪽에 말을 전했음. 멀리서 지시가 떨어졌고 놀즈를 두고 길이 열렸음. 놀즈는 안내를 받아 길이 열린 곳으로 걸었음. 그들이 향한 길 끝에 보인 것은 무려 황제였음. 놀즈는 크게 놀라 당장에 무릎을 꿇었음. 얼마만에 뵙는지, 제 걱정에 여기까지 내려오신 행보에 감동받아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음. 황제가 너무나 안도하는 얼굴로 놀즈를 일으켜 세우고 무언가 입을 여는 순간이었음.

"기습이다!"

갑자기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고 군병들이 우왕좌왕 흩어져 혼란에 빠졌음. 모두의 신경이 황제와 황태자의 재회에 몰려 있던 터라 더 전열을 갖추는데 시간이 걸렸음. 당황한 병사들의 비명과 흥분한 말의 울부짖음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요란한 발굽 소리를 내며 도망가거나 자리에 쓰러지는 군마 너머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병사들이 대처할 겨를도 없이 죽어나갔음. 부러지는 황가의 깃대와 밟히고 찢긴 깃발, 이곳저곳 땅으로 핏물이 흐르고 창에 배가 꿰뚫어지고 목이 부러진 시체들이 쌓여가고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잘린 부상자들이 즐비한 아수라장 속에서 황제의 곁에 딱 붙어 폐하를 모시라 사방에 고함지르는 놀즈의 외침과 달리, 황제는 놀즈에게 몸을 피하라며 함께 온 장수에게 놀즈를 끌고 빠져나가게 했음. 갑옷이나 투구, 무기, 방패 뭐 하나 제대로 착용하지 않고 다 쓰러져 가는 몸으로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다간 화살이나 칼받이가 되어 가장 먼저 죽기 딱 좋았으니까. 놀즈는 안된다며 그럴 수 없다고 악쓰다가 강제로 말에 실려 긴박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음. 도망가는 놀즈와 군장의 뒤에 쫓아오는 적이 몇 붙었지만 황제의 것에 버금가는 준마라 잡히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음. 걱정에 자꾸 뒤를 돌아보는 놀즈를 그 뒤에 앉은 군장이 위험하다며 힘으로 몸을 돌려 앞을 보게 했음. 한참을 달리다 군장이 뒤에서 쏜 화살을 맞고 낙마했고 자신은 혼자 계속 달리다가.. 달리다가...

의식을 찾고 깨어나보니 일이 이렇게 된 거였음.

 

 

 
상황 보고를 들은 대공이 아쉽게 입맛을 다셨음. 황제의 사망은 직접 확인했으나 황태자의 말로를 목격하지 못한 게 진심으로 아쉬웠음. 끝까지 쫓아가 죽이려고 했지만 어차피 아직 성인이 아닌, 채 여물지 않은 몸이었고 크게 다친 상태였으며 말이 향한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였으니 사지로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목숨이 붙어있다 해도 얼마 못 버틸 것이 뻔했음. 어차피 죽을 목숨은 내버려두고 얼른 빨리 궁으로 돌아가 최종 목적이자 오랜 숙원을 달성하고 싶었음. 대공은 황제와 황태자가 흉악한 오랑캐의 손에 돌아가셨다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며, 황제에게는 다른 자식이 없고 황태자도 혼인하지 않아 후사가 없었으므로 예법에 따라 겸허하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겠노라 선포했음. 바로 지금 유일하게 남은 황위 계승자인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았음.

 

 

 

 


 

 

 

뭐야.. 이제 황제 죽었어.. 라이온 언제 킹 돼요...

2017.01.21 00:32
ㅇㅇ
선생님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ef5]
2017.01.21 00:35
ㅇㅇ
모바일
쉬ㅏㅠㅠㅠㅠㅠㅠㅠ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85f]
2017.01.21 00:57
ㅇㅇ
모바일
허미 센세 갈수록 흥미진진해져요 존잼 어나더ㅠㅠㅠㅠㅠㅠ
[Code: 57a3]
2017.01.26 06:48
ㅇㅇ
모바일
선생님 대작을 내가 왜 이제 봤지ㅠㅠㅠㅠ센세ㅠㅠㅠㅠㅠ
[Code: 8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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