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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3 17:41


ㄱㅈㅅㅈㅇ/오타주의/각종주의






올리가 집에 돌아온 건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음. 현관문에서 부터 끈질기게 입술을 부딪혀 오는 남자도 함께였지. 술이 잔뜩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남자를 소파에 떨궈 놓은 올리는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음. 문을 잠그고 몸을 씻어내는 동안 남자가 잠들기를 바라면서. 남자는 평소에는 괜찮지만 간혹 저렇게 술이 만취가 되면 난폭해지는 성향이 있어서 골치가 아팠어. 막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입었을 때 올리가 나오질 않자 남자가 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어. 아픈건 죽어도 싫은 올리는 문 밖으로 소리치는 남자를 피해 창문으로 나가 비상계단을 올라갔음.



한 층을 올라오자 오늘 낮에 이사왔던 리의 침실이 보였어. 침대 위에 리가 곤히 잠들어 있는걸 보던 올리는 방안으로 막 들어오는 딜리시아를 보고 몸을 숨겼음. 딜리시아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어. 그리고는 잠 든 리의 볼에 키스를 하고 나갔음. 올리는 딜리시아가 완전히 나갈때까지 기다렸다가 열려있는 창문으로 몸을 구겨 넣었어. 덜컹이는 소리에 리가 깼고 막 발을 들여놓은 올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음.



"아..저 올리에요! 아랫집에..기억나죠?"
"네..아니....무슨.."
"미안해요. 아래에 짐승같은 남자가 있어서..좀 피해 올라왔어요."



사정한다는 듯 불쌍한 표정을 짓는 올리를 보며 리는 계속 눈치를 봤어. 올리는 리의 속을 알아채고 그녀는 나갔다고 알려줬지. 그제야 맥이 풀린듯 침대위로 쓰러지는 리를 보며 올리는 근처 의자에 앉았음. 한동안 정적이 감돌다 먼저 입을 연건 리였음. 



"그래서..면회는 잘 갔다 왔어요?"
"네. 좋았어요. 늦지도 않고! 이안에게 혼나지도 않았어요. 아, 다른 걸로 좀 혼나긴 했네요-"
"이안?"
"네. 이안이요. 그는 내 은인이에요. 뉴욕에 막 올라왔을 때 처음 시작했던 일이 작은 바의 바텐더였거든요. 이안은 거기 단골이었어요- 내 사정을 듣고는 이것저것 많이 도와줬어요."



리는 묻지도 않은 것을 마구 떠들어대는 올리를 보며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음. 리는 이 상황이 참으로도 아이러니했어. 샤워를 금방 한듯 머리가 젖은 남자. 시트 한 장으로 알몸을 가리고 있는 자신. 그런데도 신경쓰지 않고 끊임없이 얘기하는 올리를 보고는 웃음이 나왔음.



"근데 사실 이안이 어마어마한 부자였던 거에요! 맨날 허름한 차림만 하고 다녀서 상상도 못했지 뭐에요. 이런 남자를 스폰서로 잡았다가는 늙어 죽을때까지 내가 먹여 살려야 싶겠다 한 참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이안의 양자 제안은 거절했어요- 그 때는 이미 깊은 유대감을 나눈 뒤라서..오히려 입적을 하면 그 유대감을 더럽힐 것 같았거든요. 이안은 매우 아쉬워했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남는 재산은 모두 기부해버렸는걸요?하하"

"그런 의미로 리는 매우 괜찮은 사람을 잡은 것 같아요!"



올리는 말을 하며 딜리시아가 올려둔 지폐를 가르켰어. 리는 조금 멋쩍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리도 자신의 처지와 별반 다를게 없는 것 같아 어깨를 으쓱였지. 리의 반응에 올리는 웃으며 침대로 다가와 리가 앉아있는 옆에 기대 누우며 말했어.



"근데 리는 무슨 일을 해요?"
" ...그냥 뭐..작가에요...."
"우와- 내가 만나 본 작가는 딱 한 명 뿐이에요. 리가 두번째네요!"
"아..네."
"근데 리..좀 졸리지 않아요?"



리는 멋대로 침대에 올라와 자세를 잡는 올리를 보고 황당했지만 아이처럼 눈을 비벼대는 모습에 단념했어. 팔까지 들어 어깨를 토닥여줬고 올리는 금새 잠들어 버렸음.  



올리가 잠에서 깬 건 한 낮이 된 뒤였음. 집안을 둘러봐도 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다시 창문으로 나갈까 현관으로 나갈까를 고민하던 올리가 창문쪽으로 향했을때 거기에 붙여진 노란 메모지를 발견했지.



[맙소사. 설마했지만 정말 이리로 나가는 거에요? 아무튼 잘가요~ -친절한 이웃 리로부터]



올리는 쪽지를 보고 한참을 구르며 웃고는 비상계단을 통해 욕실 창문을 열고 들어갔음. 

리가 출판사에 다녀온건 그 날 초저녁이었어. 리는 현관 우편함에 들어있는 작은 쪽지를 발겼했지. 



[리의 설마대로 창문을 통해 귀가했어요! 잘 찾는줄만 알았더니 잘 맞추네요? 근데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을래요? - 당신의 친구 올리로부터]




리는 짧은 편지를 읽고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들어왔음. 때마침 울리는 전화를 받자 딜리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 이디~ 미안해서 어쩌지? 오늘 못가게됐어~
"이디?"
- 아니 글쎄 빌이 연락도 없이 일찍 도착했지 뭐야~ 내가 보고싶어서 달려왔다나 뭐라나~
"아아-"
- 나 없어도 괜찮겠어? 재밌게 놀 참이였는데~
"그럼요. 괜찮아요-"
- 그래~ 내일 점심은 같이 먹자, 즐거운 저녁 보내구~




남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이디라는 여자친구가 된 리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음. 속으로 올리에 초대에 응할 수 있어서 기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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